"中화단 거장 리커란, 혁명 견디며 산수화 새필법 개척"

입력 2003-11-25 18:06수정 2009-09-28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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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강남'(1984년작)
리커란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격동기라 할 만한 20세기를 관통해 살아 온 현대사의 산 증인.

‘예술은 인민대중에 봉사해야 하며 인민대중의 생활을 반영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예술 이념이 강요된 시대를 살아야 했음에도 리커란은 중국화의 전통을 지키면서 사실적 회화기법으로 새로운 산수화풍을 개척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마이클 설리번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저서 ‘이가염 평전’(시공사)을 통해 “리커란은 경력에서나 예술적 생애와 미학에서 중국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최근 방한한 그의 부인 쩌우페이주(鄒佩珠·83) 리커란예술기금회 이사장은 “남편은 작품마다 너무 열심히 그렸으며 그림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리커란의 '낮잠'(1984년작, 71.1×34.3cm). 도가적 풍모가 엿보이는 이 그림 위에 리커란은 '흥이 나는 대로 마구 그리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옆길로 빠졌다 해도 괴이한 일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사진제공 덕수궁미술관

이어 그는 “하지만 왕조가 무너지고, 외세 주도하에 산업화가 이뤄지고 뒤이어 일본과의 전쟁, 사회주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남편은 한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고 리커란의 삶을 반추했다. 자신도 조각가로 활동 중인 쩌우씨는 반세기 가까이 리커란을 남편 이전에 스승처럼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문화혁명 시절 리커란은 여느 예술가들처럼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전통 서예와 산수화 연구에 몰입해 강인하면서도 풍부한 자신만의 필법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함께 내한한 리커란의 막내아들 리샤오커(李小可·59)는 중국 전업화가들의 모임인 ‘베이징 화원’ 소속으로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는 화가. 그의 이름 자체가 ‘작은 리커란’이란 뜻이다. 그는 “중국의 젊은 화가들은 전통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창작의 기가 꺾일 때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실험이 큰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장우성 화백은 “1989년 9월 베이징 리커란의 아파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소박한 대가의 생활과 예술가적 열정에 놀랐다”며 “느릿하고 차분한 말씨로 한중 두 나라의 긴밀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신작들을 꺼내 보여주던 고인의 따뜻함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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