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문자 이야기'…고대 문자전파 일등공신은 상거래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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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이야기/앤드류 로빈슨 지음 박재욱 옮김/224쪽 2만2500원 사계절

다양한 문화권의 문자가 갖는 기원과 발전, 상호 영향을 다룬 책은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예지)을 포함해 최근 여러 권이 소개돼 왔다. 그러나 이 책은 다루고 있는 지식의 ‘넓이’면에서 남다르다.

이집트 상형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한자, 마야 문자 등 여러 대표적 문화권의 문자에 대한 기본적 정보를 넘어 오늘날 공공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기호, 청각장애인들의 수화, 어린이들의 수수께끼 그림, 20세기에 터키 소말리아 등 여러 나라가 로마자를 채용하는 과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화제를 주제별로 짧게 나누어 읽는 이의 부담을 덜고, 많은 사진자료를 사용해 쉽게 읽히도록 배려한 점도 돋보인다.

문자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이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발명한 토트의 일화를 빌려 문자가 가질 수 있는 해독을 풍자한다. “문자의 아버지시여, 당신은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모양만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읽겠지만 교훈을 얻지 못할 테고,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말을 포함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문자로 전해지고 전파된다는 점에서 볼 때 다소 모순되게 들린다.

초기의 문자가 가진 역할이 실제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았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이집트와 마야에서 발견된 옛 문자들은 공통적으로 ‘누가 지배자인지를, 그의 승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그의 권위가 얼마나 드높은 곳에 굳건한 기초를 두고 있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해 이용됐다. 그러나 모든 문화권에서 문자의 전파를 가속화한 것은 훨씬 실용적인 목적, 즉 부기와 상거래였다.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서 일찍이 나타난 설형문자(쐐기문자)는 풍부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 책에 인용되는 일화도 풍성하다. 문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기(書記)는 당대에 가장 유망한 직업 중 하나였다. 늙은 서기가 공부를 게을리 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수필문학도 남아 오늘날 독자의 미소를 머금게도 한다. 당대에 이미 수메르어를 번역하기 위한 외국어 사전이 활용되었음도 기록은 보여준다.

한자와 가나를 병용하는 일본의 복잡한 문자체계, 고전 문어(文語)에서 일상어를 역으로 복원해낸 히브리어의 ‘기적’ 등도 책장을 풍성하게 수놓는 화제. ‘평면 위에 선으로 표시’하는 것이 문자라는 고정관념은 잉카 제국의 ‘결승(結繩)문자’에서 깨어진다. 노끈을 묶어 의사를 전달하는 이 방법도 다른 문자체계 못지않게 훌륭히 작동했다.

‘왕이 발명한 알파벳’장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설명한다. 거의 모든 언어학자와 문자 연구가들이 그렇듯, 이 책의 저자 역시 ‘한글의 발명과 채용에 대한 이야기는 매혹적이며 교훈적’이라고 고백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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