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경'…중국인 무릎 탁 치게 한 10가지 지혜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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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시계방향으로)관중,굴원,요임금,한신,장량,제갈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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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智經)/핑멍룽(馮夢龍) 지음 홍성민 옮김/462쪽 1만9500원 청림출판

이 책의 원제목은 ‘지낭(智囊)’. ‘지혜의 주머니’란 뜻이다. 이 주머니에는 요순(堯舜) 시대부터 명나라 때까지 중국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저자는 명나라 말기의 대중문학 작가로서 최고봉이었다고 평가되는 핑멍룽(1574∼1646). 그는 역대의 정사(正史)뿐 아니라 야사(野史)와 구전소설 등 각종 문헌에서 지혜로운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선별해서 분류하고 각 이야기의 뒤에 자신의 평을 붙였다.

이야기의 선별 원칙은 “그 사람을 고려하기보다는 그 일을 고려하고, 그 일을 고려하기보다는 그 지혜를 고려한다”는 것. 주인공의 귀천이나 사건의 도덕성보다는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지혜를 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공자나 주공 같은 성현부터 시정잡배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을 수 있었다.

청나라의 고증학자들은 잡다한 이야기를 모은 듯한 이 책을 중국 지적 전통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포함시켜 권위를 부여했다. 청나라 말기에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진압하고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주도했던 증국번(曾國藩)이 이 책을 늘 머리맡에 두고 탐독했다는 이야기도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한다.

저자는 주머니 속의 지혜를 10가지로 분류했다. 공자나 제갈공명 같이 위대한 인물들의 최고 수준의 지혜를 다룬 ‘상지부(上智部)’, 조조나 관중 같은 지혜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명지부(明智部)’, 소상인이나 도둑의 지혜를 다룬 ‘잡지부(雜智部)’, 권모술수의 지략을 다룬 ‘술지부(術智部)’, 전쟁에 관한 지혜를 다룬 ‘병지부(兵智部)’, 전통사회에서 음지에 갇혀 있던 여성들에게서 배울 만한 지혜를 찾은 ‘규지부(閨智部)’ 등 폭넓은 범위에서 지혜를 찾은 핑멍룽의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조조의 경우 대군을 동원하지 않고도 적의 허를 찌른 지장(智將)으로 ‘명지부’에 소개되는가 하면, 권력 유지를 위해 충성스러운 심복들의 목숨을 가벼이 희생시키는 교활하고 잔인한 지혜의 소유자로 ‘잡지부’에 소개되기도 한다. 사람보다는 지혜를 선별기준으로 했다는 저자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분류다.

하지만 저자는 조조의 말을 인용하며 그에게도 변명의 기회를 줬다. “내가 무슨 성인이어서 예측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세상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핑멍룽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혜는 땅속에 감추어져 있는 물과 같은 것, 그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본성이다. 땅을 파서 그 물을 샘솟게 하는 것, 그것이 지혜의 배움이다. … 나는 사람의 지혜로운 본성이 흙과 바위 아래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종이 위의 말을 삽과 삼태기로 삼아 샘을 향해 파내려간다. 이 세상에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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