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마담 세크러터리'…주부에서 세계분쟁 해결사로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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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그녀는 자서전에서 “국무장관의 일이 미끄러운 바위와 바위 사이를 계속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힘들었지만 끊임없이 자극받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사진제공 황금가지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그녀는 자서전에서 “국무장관의 일이 미끄러운 바위와 바위 사이를 계속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힘들었지만 끊임없이 자극받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사진제공 황금가지

◇마담 세크러터리/매들린 올브라이트 지음 백영미 김승욱 이원경 옮김/1,2권 각 420쪽 452쪽 각 1만3000원 황금가지

1996년 12월 5일 매들린 올브라이트(66)는 샤워도 거르고 분홍색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9시에 오기로 한 전화는 47분 뒤에야 걸려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전화였다.

“국무장관이 되어 주십시오.”

“영광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이 책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자서전이다. 원제는 ‘마담 세크러터리:우연한 역사(Madam Secretary, Accidental History)’.

올브라이트의 성공에 ‘우연한 역사’라고 꼬리표를 단 것은 그 연배의 여성들이 일군 성공이 그러하듯 원대한 목표 없이 매 순간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결과임을 지적한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자의 딸로 미국 땅을 밟은 지 10년 만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세 아이를 낳아 기르던 주부가 미국 역사상 최고위직에 오르는 여성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마흔다섯 살에 “당신보다 젊고 예쁜 여자가 생겼다”며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고를 받고는 지인에게 “남편을 잡을 수 있었다면 사회생활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결국 그는 ‘자신을 버린 남편 때문에 내면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밖에 없게 돼’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의 한 가운데 서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받는 뉴스메이커가 됐다.

올브라이트는 4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100만마일이 넘는 거리를 비행하며 굵직한 세계적 현안의 해결사로 종횡무진했다.

국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수출 문제 해결에 나서기도 했다. 코소보 사태 때는 유고슬라비아연방에 폭격을 가해 세계 언론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평화협상의 실패는 국무장관으로서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이라고 자인하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으로서 그는 전임자인 워런 크리스토퍼와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출장 때 짐을 챙겨줄 아내가 없었던 것.

“하루 스케줄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오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무슨 옷을 입을지 메모했다. 그 다음엔 내가 고른 옷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그 옷이 내 몸에 맞는지 알아봐야 했다.”

올브라이트는 넥타이 대신 브로치로 포인트를 주었다. 올브라이트가 클린턴 행정부 1기에서 유엔대사로 일하던 때 이라크 언론은 그를 ‘뱀’으로 표현했다. 그 이후 그는 이라크의 고위관료를 만나는 자리에 일부러 똬리를 튼 뱀 모양의 브로치를 하고 나갔다.

‘그 뒤로 그날의 메시지에 맞는 브로치를 고르는 일을 즐기게 됐다. 길을 우회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는 거미 모양을, 기분이 들떴을 때는 풍선 모양을, 누군가 콕 쏴줄 사람을 찾고 있을 때는 벌 모양의 브로치를 이용했다.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국방문제에 관해 논할 때는 미사일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

올브라이트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나 교수 등 남자들의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서 나를 도와주고 믿어줄 남자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나는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경력과 인맥을 만들기 위해 기회가 오는 대로 잡았다.’

올브라이트는 2001년 1월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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