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두고 온 헌사'…'강요된 선택' 돌아온건 고통뿐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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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헌사/유현종 지음 /367쪽 9500원 행림출판

1975년부터 4년 동안 동아일보에 소설 ‘연개소문’(2000년 ‘대제국 고구려’로 개작 출간)을 연재하며 전국을 ‘고구려 열기’로 뒤덮었던 원로작가의 신작 소설집.

표제작은 익사할 뻔한 주인공 ‘나’가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초반부터 웃통을 벗어젖힌 중국 남부 소수민족 여인네들이 눈에 가득 들어오는 이국적 풍경이 펼쳐진다.

신문사 특집부 기자인 ‘나’는 실종된 파월 장병들의 자취를 찾는다는 취재 계획을 내놓은 뒤 베트남과 접경한 중국 윈난성 오지로 찾아든다. 회사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실제 ‘나’의 아버지는 베트남 북부에서 실종된 파월 장병이었다.

여자가 등불 하나만 걸어놓으면 어떤 남성과도 ‘연애’가 허용되는 ‘어쭈가’(愛人家)풍습 등 야릇한 이국 풍습이 배경을 수놓고, 갓 성인식을 치른 처녀 리화가 건네는 가슴 찌릿한 눈길이 흥미를 더한다. ‘나’는 아버지로 생각되는 노인의 뒤를 따르지만, 노인은 어색한 침묵과 회피의 눈길로 일관하는데….

두 번째 작품인 장편소설 ‘줄서기’는 일제강점기에서 고도성장기, 80년대로 이어지는 한 집안의 수난사를 통해 이념 갈등 앞에 선택을 강요받다 무력하게 희생되는 평민의 아픔과 지식인의 무력감을 그려낸다. 과거 단편으로 발표한 작품을 전작장편으로 개작했다.

소설가이면서도 불의에 온몸으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아픔을 안고 있는 아버지는 사학재단의 비리에 저항하다 입대하게 된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열차에서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겪은 쓰라린 가족사를 회고한다.

낮에는 국군 세상, 밤에는 빨치산 세상. 주민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나중에 고난을 당할 것인가, 당장 당할 것인가’ 였을 뿐이다.

“두 작품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근본적인 테마는 같다. 줄서기, 즉 ‘선택’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자기 판단으로 하는 선택과 달리, 옳고 그름도 판단할 수 없도록 혼돈에 빠뜨린 뒤 타의에 의해 강요된 선택이 대다수 민중에게 주어졌던 비극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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