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파리에서]미국인이 본 프랑스 문화

  • 입력 2003년 10월 3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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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프랑스인들(Sacr´e Fran¤ais)/테드 스테인저 지음

/미샬론출판사

이라크전쟁을 전후로, 미국과 프랑스 양국의 오랜 동맹 관계가 계속 삐걱거리고 있다. 길게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짧게는 미국의 제1, 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운명적으로 한 배를 타게 된 대서양 양안의 두 국가, 미국과 프랑스. 둘 사이의 반목과 불화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의 주도권 싸움으로도 볼 수 있지만 상대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연유되는 부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국면에서 두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를 구하는 이 책은 시의(時宜)에 잘 맞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의 비꼼과 감탄의 뉘앙스를 풍기는 수식어 ‘sacr´e’(‘지독한’ 혹은 ‘대단한’)가 도발적이지만 애교 있다.

이 책은 미국인의 눈에 비친 프랑스 문화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닌 바로 프랑스인들에게 소개하는 문화 비평서이다. 저자는 뉴스위크지 유럽지부 국장으로 15년간 유럽에 체류해 온 언론인 테드 스테인저. 이런 책은 아무나 쓸 수 없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두 문화에 오랫동안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몫이기 때문이다.

책의 일차적 목적은 미국 문화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이다. 문체가 쉽고 과장돼 있어 경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투명하게 저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국제관계(미국과 프랑스간의 긴장관계)로부터 시작해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민감한 주제들을 끌어내 프랑스 독자들 스스로 자신들 문화의 강점과 약점을 돌아보게 한다. 프랑스 독자들은 때로 당혹스럽기도 하고, 때로 심기가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책의 곳곳에 유머와 풍자가 배어 있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을 듯싶다.

저자는 미국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프랑스의 역설을 구체적 일상을 통해 소개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산당과 증권거래소가 공존하는 나라, 반세계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가 대중적 지지를 받는 곳이지만 맥도널드가 미국에서보다 매상을 더 많이 올리는 나라, 약국과 식당을 찾으면 늘 닫혀 있는 것 같은데도 주당 35시간 근로제를 실시하는 나라, 볼테르, 몽테스키외, 몰리에르의 나라이지만 신문이 가장 안 팔리는 나라, 테제베와 콩코드를 개발한 나라이지만 눈만 오면 고속도로가 마비되는 나라…. 이런 역설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는 프랑스의 위대한 과거와 오늘날의 현대성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괴리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과 한 번도 전쟁을 벌이지 않았지만 유럽국가 중 반미감정이 제일 높다는 프랑스. 이곳에서 반미감정을 냉철히 분석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문화 비평서들의 출간을 목격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화적 편견을 벗어나 타 문화에 대한 포용과 관심을 유도하는 이런 부류의 책들이 필요한 곳은 정작 9·11테러 이후 일방주의로 치닫고 있는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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