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분배 우선’ 예산 짤 때인가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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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발표한 내년 예산안은 분배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일반회계 총규모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비해 2.1% 증가에 그치고 특별회계까지 합치면 2%를 줄였다. 그런데도 특별회계를 포함한 사회복지 예산은 9.2%나 증가했다. 반면에 경기(景氣)와 성장에 기여하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6.1%가 줄고, 산업과 중소기업 예산은 11.2%나 감소했다.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정부의 ‘코드’가 여기에도 반영된 것인가.

빈곤계층 지원과 사회안전망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 증액만으로 사회복지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7년간 복지예산이 거의 3배로 늘었지만 빈곤층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려 선심 효과는 봤는지 모르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효율적으로 쓰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금을 쓰는 나라살림도 가계처럼 어느 한 분야를 지나치게 늘리면 다른 부문을 희생해야 한다. 내년 예산안에서 복지 분야와 국방비를 대폭 증액함에 따라 경제 활성화 관련 예산이 줄어든 것이 단적인 예다.

지금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하고 경기가 어지간하다면 이런 예산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투자와 소비가 얼어붙어 있다. 원화절상으로 수출에도 비상이 걸렸다. 내년 전망도 밝다고 보기 어렵다. 경제가 이렇다 보니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경기를 진작하기 위한 재정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데도 관련 예산을 줄인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아무리 잘 펴도 경제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보다는 못하다. 더구나 성장을 희생해서 분배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세금 거두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당연히 복지에 쓸 돈도 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경상 기준 8%로 예상하고 예산을 짰다는데 묘책이라도 있단 말인가.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배 개선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각국의 사례에서 충분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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