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인디언 이름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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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적 유머감각과 촌철살인의 독설로 유명한 할리우드 여감독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에 등장하는 유머 한 토막. 어느 날 한 인디언 청년이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이름을 지어주는 추장에게 “어떻게 이름을 생각해 내느냐”고 물었다. 추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건 아주 간단해.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조용히 눈이 내리면 ‘조용히 내리는 눈’이라 짓는 거야. 태어날 때 솔개가 하늘을 날고 있으면, 그애는 ‘하늘을 나는 솔개’가 돼. 그런데 ‘교미하는 개’야, 너는 왜 그런 걸 묻니?”

▷인디언 이름이 국내에 친근하게 알려진 것은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이란 영화가 상영된 이후일 것이다. 1990년 아카데미 주요 7개 부문상을 휩쓴 이 영화는 한 백인 장교가 인디언과 사귀며 자연에 동화돼 살아가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 ‘백인은 선하고 인디언은 악하다’거나 ‘인디언과 결혼한 백인은 죽는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해묵은 공식을 깬 영화다. 작품 제목은 황량한 통나무집에 홀로 기거하며 이따금 찾아오는 늑대와 춤추듯 노는 주인공의 인디언 이름에서 따왔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디언 족장은 ‘열 마리 곰’, 부족의 용감한 전사는 ‘머리에 부는 바람’,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인디언 마을의 백인 여자는 ‘주먹 쥐고 일어서’다.

▷최근 인디언의 삶과 문화에 관한 책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펴낸 시인 류시화씨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자연친화적이면서 개성적인 이름을 선호한다. ‘빗속을 걷다’ ‘땅 한가운데 앉아’ ‘늙은 옥수수 수염’ ‘머리맡에 두고 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두려워해’ ‘어디로 갈지 몰라’ ‘꽃가루가 얹히는 꽃’ ‘푸른 초원을 짐승처럼 달려’ ‘상처 입은 가슴’ 등. 인디언 마을을 여러 차례 오가며 만나는 이마다 질문 공세를 퍼붓는 시인에게 그들은 ‘질문이 너무 많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국내 유명인사와 직업에는 어떤 이름을 지어주게 될까? 얼마 전 폭우 속에서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을 가진 국민가수 조용필은 ‘비 맞으며 피 토하듯 노래 불러’, 만능 엔터테이너 이효리는 ‘가슴 큰 예쁜 사슴’, 홈런왕 이승엽은 ‘자치기로 공 잘 넘겨’ 정도일 것 같다. 비리 공무원은 ‘돈 먹고 시침 뚝 떼’, 오락가락 이합집산 정치인은 ‘붙었다 떨어졌다 눈치만 봐’, 기상예보관은 ‘폭풍 불고 천둥 치면 밤새워’가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도 ‘신문만 보면 열불 나’ 정도가 될 것 같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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