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쁜여자, 착한 남자'…펼치고픈 욕망, 절망

  • 입력 2003년 9월 5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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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만교는 “내가 문학을 하는 것은 세속에 발을 깊숙이 들이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소설가 이만교는 “내가 문학을 하는 것은 세속에 발을 깊숙이 들이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나쁜 여자, 착한 남자/이만교 지음/284쪽 8500원 민음사

소설가 이만교(36)에게 물었다.

“사랑이란 뭐죠?”

“소비적인 사랑은 싫어요. 두 사람 사이로 함몰되는 것. 내게는 생산적인 것이 사랑이죠. 섹스나 육체에 한정되면 쿨해질 수 없어요. 사랑의 기준은 내가 상대에게 플러스가 되고 있느냐 아니냐예요. 더 발전적인 관계를 찾아 떠나는 그녀를, 가슴 아프지만 보내주는 것이죠.”

“결혼은요?”

“일부일처제…. 아, 모든 관계를 차단하는 아주 끔찍한 제도예요. 그 안에서는 사랑하는지, 도움을 주는지는 고민거리가 아니죠. ‘이 마음 변치 말아야 한다’는 정체성, 욕망의 미미한 싹까지 검열하는 그 집요한 ‘가족주의’.”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첫 장편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작가는 결혼에서 낭만과 신성함을 찾는 것은 ‘미친 짓’이며 단지 ‘물질적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세태를 꼬집었다. 양다리를 걸친 여자 주인공은 죄책감에 시달리지도, 벌을 받지도 않는다.

이번에 펴낸 첫 창작집 ‘나쁜 여자, 착한 남자’에는 98년 소설가로 등단한 후 발표한, 우리 시대의 성(性)과 사랑을 다룬 중편 2편과 단편 4편을 담았다. ‘결혼은…’에서 젊은 세대를 움직이는 것은 단지 욕망뿐이라고 이야기했다면 ‘나쁜 여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욕망과 인간관계의 문제를 파고든다.

“‘바람’이란 상대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꿈틀대는 욕망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진 욕망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성(性)이지요. 우리 사회의 일상에 숨어 있는 적나라한 상처를 드러내는 좋은 소재인 셈이죠. 연애소설이라는 외피를 덧입고 있는 거예요.”

표제작은 착하고 정숙한 ‘그녀’가 새로 입사한 회사의 남자 상사, 그의 애인인 ‘그애’와 트리플 섹스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이야기. 욕망은 만개하지만 가치관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돈을 겪는다. 가족은 해체되고 성적 자유는 날개를 펼친다.

조화가 없는 이 세상에서 선악의 구분 역시 분명치 않다. TV의 휴먼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교통사고 가해자마저 걱정하는 ‘그녀’의 착한 마음 씀씀이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위선이라 손가락질 받는 이유가 된다. 한편 가증스러운 배불뚝이 상사의 꾀돌이 짓이 때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개인적 감성과 감각으로 느끼는 진실, 즉 내가 의도하는 바와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상대성을 깨달아야 해요. 세상이 얼마나 냉혹하고 살벌한 곳인데요. 늘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덜 당하고 살아요.”

작가는 창작집과 더불어 장편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도 함께 출간했다. 그는 다루는 방식의 차이일 뿐, 두 책은 등을 맞대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욕망과 권력의 문제에 대해 ‘나쁜 여자…’에서 현재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다면, ‘아이들은…’은 과거에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나쁜 여자…’는 자극적이고 차갑게, ‘아이들은…’은 여유롭고 따뜻하게 풀어냈지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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