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송악 500년, 북악 500년’

  • 입력 2003년 8월 1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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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아침 인왕산(仁王山) 정상에 오르니 고려와 조선 왕조의 진산(鎭山·나라 및 수도의 큰 산)인 개성 송악산(松嶽山)과 서울 북한산(北漢山)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 개성에 다녀온 문인들은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아침 송악산 어느 자락에서도 남녘의 북한산과 인왕산을 바라보며 ‘미완의 광복’을 안타까워할 동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야사(野史) 한 토막. 고려 왕조 탄생의 정신적 지주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道詵) 스님이 전국을 돌다 송악에 이르러 일대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장차 도읍이 될 대명당(大明堂)임을 알아차렸다. 도선은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하면서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물었다. 도선이 “천년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북한산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황급히 “아, 아니오. 한산(漢山·북한산의 옛 이름)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는 474년 만에 멸망해 한양에 도읍지를 넘겨야 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당초 새 도읍지로 생각했던 곳은 계룡산(鷄龍山) 일대였다. 답사차 이곳에 온 무학(無學)대사가 이 산을 보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요 비룡천형(飛龍天形)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신도안(新都內)은 바로 새 도읍이란 뜻이다. 그러나 수도는 중앙에 있어야 한다는 신하들의 건의와 왕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흙 한줌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1년여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지금도 신도안 일대에는 왕궁 공사를 벌였음을 말해주는 도량과 주춧돌이 100여개나 남아 있다. 무학대사가 지금의 왕십리(往十里)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려 했다가 한 농부에게서 “이곳에서 십리를 더 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 북한산 자락의 북악(北岳) 밑에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짓게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1392년 개경에서 창건한 조선왕조는 1394년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겼고, 518년 만인 1910년 경술국치로 멸망했다.

▷일제(日帝)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58년이 지난 2003년 8월 15일. 보수와 진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따로 집회를 열어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애국선열이 피땀 흘려 세우고 일으킨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애국가의 한 구절처럼 ‘마르고 닳도록’ 지속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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