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폴리테인먼트(Politainment)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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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은 TV 심야토크쇼 ‘투나잇’에서였다. 두 달 전 ‘터미네이터3’를 홍보하던 그 자리에서 슈워제네거가 “(주지사에게) 화가 나서 더 받아줄 수 없다”고 한 말은 영화 ‘네트워크’ 속의 대사이고, “hasta la vista(잘가라), 베이비” “나는 돌아온다(I'll be back)”라고 한 말은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대사라고 뉴욕 타임스는 소개했다. 정치(Politics)와 오락(Entertainment)의 환상적 만남, 이름 하여 ‘폴리테인먼트’의 현장이다.

▷폴리테인먼트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오락처럼 즐거운 정치를 시작했다면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오락과 정치의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은 폴리테인먼트의 황금기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TV에 나와 색소폰을 불었고 MTV엔 정치인들이 출연해 좋아하는 속옷 색깔을 논했다. 이 명랑시대는 그러나 9·11 테러참사로 바짝 오그라들었다. 테러가 난지 엿새 만에 빌 메이허라는 코미디언이 테러리스트와 미국 대통령을 견주어 풍자했다가 목이 달아나게 된 것이다. 국가안녕이 위태로운 시기, 국민 생명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TV쇼에서 조롱당하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출사표를 던진 액션 스타의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다니, 미국이 다시 ‘제국주의’의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것일까. 몸을 아끼지 않고 인간을 구하는 터미네이터, 강하고 남성적인 마초 또는 리더의 이미지만으로도 슈워제네거는 충분히 정적들을 제압할 것이라는 분석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정치는 이미 쇼 비즈니스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틴 캐플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치와 쇼의 공통점은 수두룩하다. 인기를 먹고 산다든가, 연기력과 의사소통능력이 중요하다든가, 권력이 움직이는 배반의 물결을 탈줄 알아야 한다는 등. 그래서 워싱턴에선 “정치란 멍청한 사람들을 위한 쇼 비즈니스”라는 말도 있다던가.

▷경험과 식견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슈워제네거는 결코 제2의 레이건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무능함이 ‘입증’되지 않았고, 이민자 출신이어서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을 주며, 정치적 빚이 없어 이익집단에 휘둘릴 위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승리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정치가 오락처럼 되는 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우리처럼 비극인 것보다는 낫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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