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거미 여인의 집'…좌절…사랑…386세대의 초상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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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류가미. 그의 신작 ‘거미 여인의 집’은 80년대라는 덫에 걸려 좌절한 한 세대의 절망과 새로운 만남을 치밀하게 표현한다.사진제공 이룸
작가 류가미. 그의 신작 ‘거미 여인의 집’은 80년대라는 덫에 걸려 좌절한 한 세대의 절망과 새로운 만남을 치밀하게 표현한다.사진제공 이룸
◇거미 여인의 집/류가미 지음/254쪽 8500원 이룸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태어남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다. 오로지 출생과 사망의 엄정한 사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삶은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한 삶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삶이 있고, 성숙한 삶이 있는가 하면 또 미성숙한 삶도 있다.

이같이 저마다 다른 삶 때문에 세상에 이야기가 존재한다. 모두의 삶까지 같다면 구태여 누가 이야기를 만들고 듣겠는가. 그래서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도, 그렇다고 재미를 위한 상상의 결과물만도 아니다. 오히려 저마다 자기의 삶을 살았던, 살아가고 있는, 앞으로 살기 위한 치열한 시간의 전개다. 하긴 그것이 없다면 그토록 힘들여 써나갈 일도 없을 것이다. 류가미의 신작 소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여기에는 몇 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조금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그 이야기들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꽤나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그것은 좌절한 청춘의 기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60년대에 출생한 386세대의 좌절이다. 80년대라는 암종(癌腫)에 붙들려 현실에 절망한 자가 그 절망을 이겨내고자 새로운 운명을 창조하는 것, 작가가 쓰는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결국 거기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수사(修辭)와 서사(敍事)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자전(自傳)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것이 위에서 넌지시 암시한 바처럼 단순한 독백은 아니다. 작가에 따르면 자전의 주인공인 ‘나’라는 존재 자체가 단일하거나 명백한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아의 분신에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류가미의 이야기 속에는 타인의 욕망에 맞춰 살고자 자신의 주체를 지우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타인의 시선에 구속됨이 없이 주체의 욕망 속에서만 사는 인물이 있다. 앞의 유형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매몰되는 면을 드러내고 있다면 뒤의 유형은 자아가 극대화된 나머지 관계가 지워진 면모를 보여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이 두 결핍이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사랑’의 이름으로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동시에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그래서 류가미의 이 소설은 동시에 사랑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사랑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마치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각각의 인물은 사랑과 미움의 이름으로 자신을 구속하는 세계를 열고 나와야 한다.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성숙으로의 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또한 성장과 성숙의 이야기다. 마치 인간 존재의 영혼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지적인 즐거움이 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하지만 류가미의 이번 작업은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세상을 읽는 이론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이론으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혐의를 쉽게 벗어던지지 못한다. 그래서 지식의 확충은 있을지언정 내면의 감동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저마다의 삶이 존재하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며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한 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가 세계와 존재에 대한 인식을 위한 흥미로운 한 방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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