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청소년증'

  • 입력 2003년 8월 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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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의 벽이 철옹성처럼 높고 두꺼운 우리 사회지만 초중고교의 정규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이 적지 않다. 충북 영동대 김재규 전 총장은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으면서 대학 총장에까지 올랐다. 영화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은 중학교 중퇴이고 TV 드라마 ‘용의 눈물’의 작가 이환경씨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세계적 헤어디자이너 박준씨는 중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방송의 ‘성공시대’ 특집에는 이처럼 ‘가방 끈은 짧아도 성공의 끈은 긴’ 사람들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들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일한 경험으로 성공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 뒤에는 엄청난 시련과 좌절이 있었다.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문을 두드린 회사들로부터 퇴짜를 맞기 일쑤였고 설령 취업을 해도 차별대우에 시달려야 했다. 유독 학연(學緣)을 많이 따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번번이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교복을 입은 또래 친구들이 부러워 남몰래 눈물을 흘린 일도 많았다.

▷청소년기준법에 규정된 9∼24세의 우리나라 청소년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37만8000명. 이 중 정규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835만4000명이고 그렇지 않은 비(非)학생은 247만4000여명(군 복무 중인 55만명 제외)으로 전체의 22%나 된다니 놀랍다. 이들 비학생은 학생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 설움을 겪고 있다.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 학생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비자를 받기도 어렵고, 저금통장을 마련하려 해도 부모와 함께 은행에 가야 한다. 신분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이런 차별을 견디다 못해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시는 대중교통이나 문화시설 이용 때 학생이 받는 할인혜택을 비학생도 받을 수 있도록 다음달 이들에게 ‘청소년증’을 발급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문화관광부도 이들 비학생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명사회란 결국 학생이든 비학생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다. 하지만 이번 조치만으론 여전히 부족하다. 이들 비학생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더욱 늘려가야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점진적으로 비학생의 비율을 줄여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능력 있고 패기만만한 근로청소년들의 도전 정신이 사회의 차별과 냉대 속에서 꺾이고 시들어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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