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오래된 글맛… 그리운 어릴때 그맛

  • 입력 2003년 8월 1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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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336쪽

◇꿈을 끼운 샌드위치/320쪽/홍승면 지음 각권 1만원 삼우반

흔히 ‘언론인’의 칼럼은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수더분한 재미에 오히려 놀랄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마주하고 생각한 바를 적은 글이니 글맛을 굳이 먹을거리에 빗대 표현하자면 싱싱한 풋고추를 묵은 된장에 듬뿍 찍어먹는 맛 같다. 20여년 전 쓰여진 글은 텁텁하지만 여전히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겉보기엔 소박한 듯하지만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내공의 깊이가 있다. 농담으로 “아는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는 것이 많으면 같은 음식이라도 한층 더 깊고 넓게 즐길 수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저자가 1976년 7월부터 1983년 4월까지 ‘백미백상(百味百想)’이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80여회에 걸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1983년 학원사에서 원고의 일부를 묶어 ‘백미백상’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적이 있으나 모든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원사판은 현재 절판됐다.

저자 홍승면(1927∼1983)은 1949년 합동통신 기자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동아일보를 거치며 명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친 언론인. 이 글은 그가 언론계를 떠난 1975년 이후에 쓴 것이다. 지면을 떠난 그는 칼럼 대신 수필을 썼다. 마치 ‘수필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자유자재의 글재주를 발휘했다. 때로는 설명체로, 때로는 대화체로 풀어나간 글 속에는 맵고, 짜고, 시고, 단 갖가지 맛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산어보, 해동역사 등 고서를 줄줄 꿰는 지식과 프랑스 미국 필리핀 베트남 등을 오가는 경험이 있다.

상추 한 장에 밥을 싸먹는 소박한 밥상 앞에서도 그의 음식 감상은 남다르다. 이 글이 쓰일 당시에는 상치가 표준어였다.

“상치쌈에 쓰는 양념도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나, 나는 된장에 약간의 고추장을 섞은 것에 참기름을 듬뿍 넣어 비벼서 볶은 것을 좋아한다. 볶은 멸치를 여기에 넣기도 한다.”

읽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런데 단지 맛나게 쌈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상추쌈의 역사에 대한 친절한 해설도 빼놓지 않는다.

“또한 ‘해동역사’에는 ‘고려 사람들은 날채소에 밥을 싸서 먹는다’고도 적혀 있다. 깻잎 또는 콩잎 같은 것도 썼겠지만 이미 고려시대에 상치쌈을 먹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간단한 ‘복달임’(음식으로 복날 더위를 쫓는 것) 음식으로 수박을 추천하면서 ‘동국세시기’의 기록을 들춰 근거를 제시하고 우리가 흔히 먹는 잡채를 두고 중국음식과 한국음식이 만나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서민적인 생선이었던 조기가 어느새 고급 생선으로 변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서울의 명물 추탕(鰍湯)집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동서양과 고금의 음식을 넘나드는 글들을 한껏 즐긴 뒤 저녁 식탁에라도 앉는다면 늘 먹던 묵은 김치에서 새삼스러운 맛을 찾게 될 것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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