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새 특검과 ‘검찰의 原罪’

  • 입력 2003년 7월 8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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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된 새 특검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진 8일 오전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 간부들과 수사관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중수부 간부들은 이틀 전 현대비자금 150억원에 대한 계좌추적 착수 사실을 발표하면서 “새 특검법이 마련되면 수사 자료를 새 특검팀에 넘겨주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수사팀원 가운데엔 새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결국 검찰이 수사를 도맡게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도 많았다.

검찰이 중수부의 최정예 인력인 중수1, 2과와 특별수사지원과를 한꺼번에 계좌추적 작업에 투입한 사실도 이 같은 예상을 뒷받침한다. 현재 수사에 투입한 직원만도 수사관과 계좌추적 요원 등 무려 20여명. 검찰은 또 조만간 금융감독원에서 계좌추적 전담요원 5, 6명가량도 파견받을 예정이다. 한마디로 ‘매머드급’ 수사팀이 구성되는 셈이다.

검찰이 이처럼 의욕을 불태운 배경에는 이번 수사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핵폭탄급’ 사건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특검 관계자들에 따르면 150억원에 대한 돈의 흐름을 추적한 결과 상당액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으며 조금만 더 추적하면 줄줄이 ‘대어’를 낚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러나 검찰은 앞으로 수사를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수사 결과를 고스란히 새 특검팀에 넘겨줘야 한다. 애써 수사만 하고 수사 성과는 새 특검팀이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대검의 한 중간간부는 “이러다가 검찰이 잡범만 처리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며 자조 섞인 어조로 푸념했다. 수사팀원 중 일부는 “이제 휴가나 가야겠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애초부터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정치권에 넘기지 않고 수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 검찰은 12·12 및 5·18사건과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에 대한 비리 수사에서 ‘눈치 보기’로 일관하다 재수사하는 치욕을 겪었다. 김대중(金大中) 정권 시절엔 검찰이 한 수사를 특검이 3차례나 재수사를 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오늘날 검찰이 자조하도록 만든 원죄로 작용한 것이다.

검찰은 이번의 자괴감이 크면 클수록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나갈 때 거악(巨惡) 척결의 영광스러운 임무도 주어진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새겨야 한다.

하종대 사회1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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