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 입력 2003년 6월 6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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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에는 시공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선인들의 글 64편이 실려 있다. 한편 한편의 글마다 삶의 지혜와 풍류가 엿보인다. 그림은 김홍도 작 ‘포의풍류’.동아일보 자료사진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에는 시공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선인들의 글 64편이 실려 있다. 한편 한편의 글마다 삶의 지혜와 풍류가 엿보인다. 그림은 김홍도 작 ‘포의풍류’.동아일보 자료사진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강희맹 외 지음 손광성 외 편역/324쪽 9000원 을유문화사

옛날에 음식을 훔쳐내는 데 귀신같은 재주를 지닌 늙은 쥐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 제 힘으로 연명하기 힘들어지자 젊은 쥐들은 그에게 기술을 배우는 대신 음식물을 나눠줬다. 시간이 흐르자 젊은 쥐들은 더 배울 게 없다며 그를 따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쥐들이 맛난 음식을 찾았는데 솥뚜껑을 열 방법이 없었다. 늙은 쥐를 다시 찾아가 간청한 끝에 해결책을 알아냈다. 솥 아래쪽을 파내면 솥이 기울면서 뚜껑이 저절로 열린다는 것.

‘농가월령가’를 지은 조선시대 고상안은 이 우화에 빗대 나이든 사람의 사리 판단이 젊은 사람보다 낫다고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경륜이라고 어찌 다를까. ‘오늘도 나라가 되어가는 꼴을 보면 국권은 경험도 없는 어린 아이에게 맡기고 늙은이들은 수수방관하여 입을 꼭 다문 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다 요긴한 말을 했다 하더라도 도리어 견책이나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듯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비롯해 일기 편지 제문 상소 등 다양한 장르의 빼어난 옛글 64편이 한권에 모였다. 최치원 김부식 박지원 허균 정약용 김시습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인들이 쓴 한문글의 원맛을 살리면서 정감있는 우리말로 풀어낸 것. 유쾌한 풍자와 은근한 해학, 사리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비판정신, 서정성과 소박한 일상 등이 군더더기 없는 글에 담겨 있다. ‘생활의 예지’ ‘사랑과 고뇌 그리고 소망’ ‘인식과 비판의 칼’ 등 7개의 장을 통해 선비의 삶과 정신세계를 오롯이 드러낸다.

선비란 누구인가. ‘선비는 늘 뜻을 고상하게 하며, 배움을 돈독하게 하고, 예절을 밝히며, 의롭게 행동한다. 그뿐만 아니라 선비는 성품이 고결하며, 탐욕이 없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신흠)

책장을 넘기면서 고전이 세월을 뛰어넘어 살아남는 까닭을 깨닫는다. ‘캄캄한 밤에 촛불로 길을 비추듯 인간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온 선인들의 지혜와 삶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아들이 궁지에 빠지도록 내버려둔 강희맹의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권근의 ‘소를 타고 다니는 즐거움’에서는 느린 삶의 여유를 배울 수 있다. 당대의 유학자 이황이 남명 조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한없는 겸손이 묻어나며 실학자 정약용의 ‘파리를 조문하는 글’에서는 권력 가진 자들을 질타하는 날선 비판이 느껴진다.

‘한 시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영합하기 위하여 지은 문장을 훌륭한 문장이라고 할 수 없고 한 시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영합하기 위하여 다듬어진 인물을 참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처럼 잠언 같은 글도 만날 수 있다. (신흠의 숨어사는 즐거움)

김종직 허균 박지원이 먼저 떠난 부인을 위해 쓴 제문은 가슴을 저민다. 선비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이 긴 울림을 남겨주는 것. 세조 때의 명문장가 김종직이 아내의 영전에 바친 글이다.

‘우리가 백년을 함께 하기를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서른해. 그런데 당신은 영영 내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한마디 말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습니다. (…) 돌이켜 생각하면 당신은 이 세상에 와서 한번도 좋은 시절을 보지 못하고 늘 고생만 하다가 떠난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좋은 집이 생겨도) 함께 거닐 당신이 없습니다. 적막한 서편 침실은 당신이 거처하던 방이라 옷이며 이부자리며 빗 같은 것들을 평시와 마찬가지로 놓아두었습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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