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안인해/변신의 미학

  • 입력 2003년 6월 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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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명작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로 등장하는 무용수는 전부 여자들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남자 무용수를 백조로 등장시킨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가 국내에서 공연되어 화제다. 영국의 저명한 안무가 매튜 본이 제작해 ATM이라는 단체가 공연한 이 작품에서 ‘수컷 백조’들은 근육질의 웃통을 벗어젖히고 깃털바지를 입은 채 때로는 강렬한 몸짓으로, 때로는 방정대면서도 코믹한 몸짓으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두 명이 추는 ‘파 드 되’, 군무(群舞) 등 격정적이면서도 현란한 발레 테크닉과 현대무용이 어우러지는 파격을 선보였다. 어릴 적 하얀 튀튀(tutu)를 입은 백조를 꿈꾸며 발레에 심취한 적이 있었던 내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에서 백조는 왕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백조가 아니라 카리스마가 넘친다. 왕자의 현실을 위로해 주는 안식처가 된다. 백조는 왕자를 나쁜 백조들의 공격에서 보호한다. 지순한 사랑의 힘으로 변신한 백조는 죽음이라는 자기 희생의 길을 택한다. 왕자의 연약함에 대해 사랑으로 감싸지 않고 냉정하게 대했던 왕비는 백조를 따라 숨진 왕자를 보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백조의 품에 평온하게 안겨 일체가 된 왕자는 마지막에 백조의 이런 변신을 합리화한다.

▷백조의 변신은 무죄다. 기존 이미지를 깨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웅장하고 힘찬 선율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안무가 매튜 본이 ‘변신의 변신’을 시도하여 기존의 연약한 백조로 되돌아가도록 안무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백조와 차별화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가 쌓은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1년간 반복해서 듣는 노력 끝에 영감을 얻었다. ‘수컷 백조’는 ‘힘과 아름다움과 자유’의 상징으로 탄생했다. 이제 그는 ‘매튜 본스러운’ 백조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한반도 안보의 초석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한미 동맹관계의 공고화를 위해 방미기간 중에 보여준 변신의 언행이 주목을 끌었다. 지지층이 뒤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만큼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비쳤다. 전략적 파격이었지만 변신으로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면 ‘변신의 변신’을 경계해야 한다. 대외용과 국내용이 다르게 발표되고 해석된다면 양쪽에서 모두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출국하게 될 노 대통령은 ‘변신의 미학’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안인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 yhah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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