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 권/光州어른들의 “온정주의”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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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5·18기념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이 21일 청와대에서 만나 나누었던 발언들이 광주지역에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5·18행사추진위 간부들이 노 대통령에게 5·18 기념식장 불법시위를 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학생들에 대해 “젊은이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생각해달라”고 선처를 요청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광주시민들은 “이들 간부들이 일정 부분 광주를 대표해 청와대를 방문했기 때문에 광주의 일반 정서를 제대로 대변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회사원 배모씨(43·광주 동구)는 “학생들의 행동을 준엄하게 꾸짖지 않고 먼저 선처만을 요청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으며 이는 대다수 시민들의 명예와도 관련되는 것이 아니냐”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전남 지역의 한 자치단체장은 “지역 이미지와 다수 시민의 명예에도 먹칠을 한 이번 사건을 무작정 덮어 달라는 것은 일반 시민들의 정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우리 사회 어른들도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나무랄 줄 알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광주의 어른들’로 인식돼온 이들 간부들이 그동안 원로의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물론 이들을 포함해 이 지역 재야원로들이 8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 최루탄 연기 속에 시위학생들을 에워싸며 선처를 호소했던 극적인 사례들을 광주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 학생운동이 폭력적이면서 국체(國體)를 부정하는 정도로까지 변질되어 갈 때도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동안 ‘한총련’ 계열 학생들이 대학 안에 ‘김일성분향소’를 설치하고, 엉뚱한 젊은이를 ‘프락치’로 오인해 집단폭행치사 사건을 일으켰을 때도 지역 원로 중 그 누구도 꾸짖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일부 시민들은 노 대통령이 이번 한총련 학생들의 불법시위 사건을 ‘난동’으로 규정한데 이어 지방경찰청장을 직위해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수를 너그럽게 생각해 달라”는 이들의 처신은 현실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지법의 한 판사는 “최근 대법원이 한총련에 다시 한번 ‘친북 이적단체’라고 판결한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며 “대책 없는 온정주의는 경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권 사회1부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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