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진/법치적 사고

  • 입력 2003년 5월 18일 18시 20분


코멘트
신도시에서 자전거 전용도로 같은 시설을 정비하려면 누가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중국에서 입국하는 여행자 중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감염 의심이 가는 승객을 격리 또는 감시하려면 필요한 조치는 무엇일까. 일반 시민들은 막연하게 관계 당국의 행정처분이나 예산조치만 생각할 뿐 구체적인 절차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앞의 경우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란 것이 있어서 해당 시장 또는 군수가 자전거이용시설 정비계획을 작성한 후 도지사의 승인을 받아 추진하게 된다. 뒤의 경우는 먼저 보건복지부령인 ‘검역법 시행규칙’을 고쳐 사스를 검역전염병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검역법에 따른 격리 또는 감시조치가 가능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법치국가에서 모든 행정상 또는 예산상의 조치는 당연히 법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국민은 자신을 위주로 한 편익이나 국가적 비용 또는 심정적 타당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반면 법적 근거가 있는지 혹은 적법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치주의의 뿌리가 약하고 법이 국민의 생활 속에 밀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흔히 한국 사회에 법치주의가 쉽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우리의 유교문화적 전통과 정치 사회적 경험을 든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경세유표’란 저서에서 ‘예가 앞서고 법은 다음이다(禮主法從)’라고 기술한 바가 있지만, 아직도 국민의 정신풍토 속에는 인륜과 도덕, 예의 등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정한 실정법보다 우선시하는 풍조가 남아 있다. 이른바 ‘떼법’(떼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태)이라든지 ‘국민 정서법’이라는 법전에도 없는 ‘법’이 나타나는 것도 그런 사례들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독재체제, 군사정부 등을 거치면서 법이란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기보다 권위주의적 통치를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제정 운용되고 있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작용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법이란 국민의 대표에 의해서 제정된 하나의 약속이므로 그것이 곧 국민의 의사라고 보아야 옳다. 일부 법적용 현실에서 불평등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약속된 국민의 의사를 거부할 이유는 될 수가 없다. 경북 포항에서 시작된 물류대란이 수습되는 과정을 보면서 당사자들 주장의 옳고 그름과는 별도로 그 반(反)법치적인 집단성에 국민적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성진 객원논설위원·국민대 총장 sjchung@kookmin.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