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칼럼]自害 사회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17분


코멘트
정부의 높은 분들은 요즘 바쁘더라도 종로거리에 꼭 한번 나가 보기 바란다. 서울의 간판 거리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무질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노점상이 인도를 점령하고 있어 행인들은 비좁은 사이를 힘겹게 뚫고 지나가야 한다. 도로의 주객(主客)이 뒤바뀐 모습이다. 이 길을 지날 때 조심할 게 한 가지 있다. 인도 위를 거침없이 다니는 오토바이다. 한 주한 외국인은 “세계에서 인도 위로 오토바이가 다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는데 종로거리에 가면 실제 현장을 쉽게 체험할 수 있다.

▼각자 이익만 좇다간 모두가 공멸 ▼

어느 심리학자는 인간의 유형을 ‘목전 이익 추구형’과 ‘장기 실리 추구형’ 두 가지로 나누면서 한국인은 대체로 ‘목전 이익 추구형’이라고 밝혔다. 조금 참고 기다리면 사회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오는데도 눈앞의 개인적 이해에 급급해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세상에 눈앞의 이익을 싫어할 민족은 없겠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에 피해를 주는 경우다.

종로거리도 그런 사례다. 우선 행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도시미관을 해쳐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시민들은 복잡하고 위험한 이곳을 가급적 안 가려고 할 것이다. 노점상들에게는 당장 금전적 이익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종로거리의 경기가 죽으면 이들도 피해자가 된다. 노점상들이 행인에게 인도를 양보하고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 영업하는 타협안도 있겠지만 그럴 낌새는 아직 없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너무 많다. 도로가 아무리 막혀도 너나없이 승용차를 몰고 나가 도로를 더욱 마비시키는 것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옆 도시의 공단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새 공단을 조성하는 것 따위가 그런 예이다.

앞서 예를 든 정도만 해도 한국적 상황이라고 자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모이고 모여서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집단가해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 국민이 목전 이익 추구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보면서 이런 현상이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자진해서 수출 길을 막는다는 것은 ‘가해’의 단계를 넘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달리 하소연할 수단이 없는 화물차주들에게 파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이 국가를 멍들게 하고 결국 자신들도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애써 외면했다. 파업을 하더라도 이번처럼 ‘완전 봉쇄’가 아니라 일부 물류의 길을 터준다든지 해서 그들도 국익을 생각한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파업이 실시간으로 해외에 전파를 타면서 겉으로 드러난 손실액 말고도 국가경제에 미친 피해는 엄청나다. 정부가 원칙을 포기하고 화물연대에 두 손을 들어버린 것은 불을 끄기는커녕 이런 ‘목전 이익 추구’에 기름을 부어버린 꼴이다. 나라의 공정한 심판으로서 전혀 자격이 없는 정부이며 국익 중재자로서도 낙제점의 정부가 아닐 수 없다.

한편에서는 사회적 힘의 균형과 분배정의를 바로 잡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말은 분명히 해두자. 이번 사례를 놓고 사회적 약자 얘기를 꺼내지 말라. 엄격히 말해 이번 일은 같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시민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갈등은 서로가 살아남는 공존을 전제로 한 것이지 이번 일처럼 서로를 해치는 길로 가지는 않는다. 갈등 해결 과정에서 결코 넘어서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나 ‘게임의 법칙’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수출로 사는 나라 수출 길 막다니 ▼

이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비슷한 해답을 찾자면 한국 사회가 반드시 수호해야 할 소중한 공동체라는 인식을 국민 모두가 갖도록 하는 것 정도다. 당장은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럽더라도 나중에 자신이나 후손들에게 더 큰 이익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지금 상황에서는 공허한 기분이다. 정부의 개혁이 이번과 같은 방식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한마디로 암울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