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스피드+컨트롤… “神의 투수 어디없소?”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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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선 투구의 3대 요소를 속도(Velocity)와 위치(Location), 움직임(Movement)의 세 가지로 나눈다. 속도는 투구스피드, 위치는 컨트롤, 움직임은 공의 위력을 말한다.

투수가 빠른데다 정확하게 제구가 되는 공을 갖고 있다면 어떤 타자라도 치기 힘들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 그러나 투수 대부분은 스피드와 컨트롤 중 한 가지가 모자란다. 공이 빠르면 제구가 안되고 컨트롤에 신경쓰면 스피드가 떨어지기 마련. 이 두 요소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상반되는 측면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 공이 가장 빠른 투수를 꼽는다면 우완은 엄정욱(SK), 좌완은 이혜천(두산). 엄정욱은 올초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중 연습경기에서 160㎞(비공인)를 스피드건에 찍었고 이혜천은 지난해 정규경기에서 153㎞를 몇 차례 기록한 적이 있다.

둘을 비교하자면 엄정욱은 원래 공이 빨랐고 이혜천은 프로에서 공이 빨라진 케이스다. 엄정욱은 “중앙고 시절부터 내 공이 팀에서 가장 빨랐다. 고교 때 이미 148㎞를 던졌다”고 말한다.

이혜천은 아주 특이하게 후천적인 노력으로 스피드를 얻은 경우. 부산상고시절 그는 130㎞를 겨우 넘기는 평범한 투수였다. 본인의 입을 빌리면 “그 때의 난 투수도 아니었다”는 것. 프로에 입단한 뒤 이혜천은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98년 프로 입단시 69㎏의 빈약한 몸매였던 그는 살을 찌우고 힘을 키우는 데 주력했고 손목 힘 기르는 훈련도 거르지 않았다.

그는 ‘스피드는 투수의 손목 스냅에서 나온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타자가 힘이 아닌 손목의 임팩트로 홈런을 만들어 내듯이 투수도 스냅으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 악력을 기르기 위해 물속에서 손목을 흔드는 훈련을 많이 했다”는 게 그의 말.

엄정욱과 이혜천의 공통점은 모두 제구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 아무리 공이 빨라도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면 소용없다. 엄정욱은 지난해 경기에 나갔다 하면 땅에 공을 패대기치거나 공중으로 날려 팬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올해 부임한 SK 조범현 감독은 엄정욱의 들쭉날쭉한 볼이 정신적인 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동안 하도 야단을 맞아서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올해 전지훈련과 시범경기에서 (엄)정욱이한테 ‘폭투 3,4개씩 해도 좋으니까 마음껏 던지라’고 강조했어요. 이젠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혜천은 지난해 나쁜 버릇 하나를 고친 뒤 컨트롤이 나아졌다. 투구하고 나서 몇 ㎞가 나왔나 궁금해 전광판을 흘낏 쳐다보는 버릇이이었다. 스피드에만 신경쓰다보니 볼이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았던 것.

엄정욱과 이혜천이 빠른 공을 갖고 있지만 이들을 ‘정상급 투수’라고 부르진 않는다.130㎞대 후반의 평범한 공을 갖고도 얼마든지 일류투수가 될 수 있다. 김용수(전 LG)가 그랬고 송진우(한화)가 그렇다. 이들은 제구력과 변화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투수출신인 두산 김인식 감독은 “투수의 3대 요소 중 굳이 꼽자면 마음먹은 곳으로 공을 뿌릴 수 있는 제구력을 첫째로 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피드보다 제구력일까? 텍사스 레인저스의 벅 쇼월터감독은 스피드를 잃어버린 박찬호에게 “컨트롤에 집중하라”고

지시했지만 박찬호가 제구력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글쎄…. 이 문제는 아이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않을 것같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 최동원-장호연 ‘투구 논쟁’

강속구냐, 제구력이냐. 야구인들의 영원한 수수께끼인 강속구와 제구력 논쟁. 시원시원한 투구폼에서 뿜어져나오는 불같은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했던 최동원과 능글능글한 표정에 자로 잰 듯한 제구력으로 타자를 골탕먹였던 장호연이 지상 대결을 벌인다.

▽최동원(45·스카이KBS해설위원·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 2.46)

볼 스피드가 빠르면 여러모로 유리하다. 타자를 압도하는데 빠른 볼 만큼 좋은 것은 없다. 빠른 볼을 던지려면 체격조건이 우수해야 한다. 하지만 체격만 좋다고 빠른 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체격은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빠른 볼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으려면 자신만의 폼을 가져야 한다. 남들이 빠른 볼을 던진다고 해서 그 폼을 그대로 베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응용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제구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 마이너리그에 시속 160㎞대를 던지는 선수가 수두룩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제구력 때문이다. 갈수록 타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시속 150㎞대의 강속구라도 제구가 안되면 얻어맞기 일쑤다.

빠른 볼이 메리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또 다른 주무기가 필요하다. 나는 현역시절 강속구 이외에 드롭성 커브를 즐겨 던졌다. 선동렬도 슬라이더가 위력적이었다.

이는 심리적인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우선 타자에게 다른 볼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번엔 어느 구질이 들어올까’라고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감을 갖기 위해선 빠른 스피드의 직구가 역시 최고다.

▽장호연(43·신일고 감독·통산 109승110패 17세이브, 평균자책 3.26)

투수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서 제구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제구가 안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공 빠르기 보다는 구질이 훨씬 더 중요하다.

공은 근력으로만 던지는 게 아니다. 이른바 ‘공 끝이 살아있는’ 좋은 구질의 투구를 하기 위해선 관절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의 변화는 관절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관절 각도의 범위가 넓을 때 구질이 좋다.

박찬호를 보자. 박찬호는 한양대 시절 150㎞ 후반을 이미 던졌다. 미국에 건너가 체격은 예전보다 더 좋아졌지만 스피드가 그만큼 좋아진 것은 아니다. 최근엔 오히려 가속력도 없고 스피드도 떨어졌다. 평소 관절관리에 소홀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선수들에게 항상 ‘같은 힘이면 지혜가 앞선다’고 강조한다. 같은 스피드, 같은 코너워크에서도 구질이 좋고 상대를 읽는 두뇌플레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조용준의 경우 슬라이더만 3가지가 된다.보통 기교파라고 하면 도망가는 피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도망가면 승리할 수 없다. 변화구가 주무기라도 얼마든지 공격적인 피칭이 가능하다.

스피드보다는 어떤 구질의 공을 얼마나 제구력을 발휘해 던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공이 빨라도 실투하면 얻어맞기 마련이다. 실투를 얼마나 적게 할 수 있느냐가 투수 능력의 잣대라고 생각한다.

정리〓전 창기자 jeon@donga.com

● OPS로 본 메이저리그 투수들

메이저리그에선 타자의 능력을 재는 척도 로 장타력과 출루율을 더한 OPS(On- Base Plus Slugging Percentage)를 애용한다. 누가 더 멀리 치고, 자주 누상에 나갔는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는 73홈런 신기록을 세운 2001년 1.379, 지난해는 1.381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반면 이치로(시애틀)는 신인왕과 아메리칸리그 MVP를 동시에 거머쥔 2001년조차 0.838(전체 56위)에 불과해 자질 시비에 휘말렸었다.

투수의 OPS는 정반대다. 이번엔 누가 장타를 덜 맞고, 타자를 적게 내보냈는지가 관건. 이를 보면 본즈와 이치로의 예처럼 강속구와 제구력 투수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애리조나의 원투펀치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이 대표적. 160㎞대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하는 존슨은 지난해 24승5패 평균자책 2.32로 내셔널리그 투수 3관왕에 올랐다. 반면 실링은 공이 느린 편은 아니지만 9이닝 평균 볼넷 허용률이 1개꼴에 불과한 최고의 제구력 투수. 그는 23승7패에 평균자책은 전체 18위(3.23)였지만 OPS에선 0.612로 존슨(0.618)을 앞섰다.

올해 볼넷 3개에 불과한 서재응(뉴욕 메츠)이 피안타율 97위(0.293)에도 OPS는 64위(0.744), 평균자책 30위(3.15)인 것도 같은 맥락. 반면 김병현(애리조나)은 피안타율 20위(0.215)의

뛰어난 구위에도 오히려 OPS는 46위(0.696), 평균자책은 56위(4.00)로 치솟았다.그렇다고 제구력이 항상 강속구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박찬호가 텍사스로 이적한 지난해부터 평범한 투수로 전락한 첫째 이유로 불같은 강속구의 실종을 꼽고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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