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남자의 탄생'…한국남자들 '내안의 아버지' 버려라

  • 입력 2003년 5월 2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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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의 1857년작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가 남자아이에게 오줌을 누게 하는 광경을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사진제공 푸른숲
장 프랑수아 밀레의 1857년작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가 남자아이에게 오줌을 누게 하는 광경을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사진제공 푸른숲
◇남자의 탄생/전인권 지음/299쪽 1만3000원 푸른숲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을 받으며 건강한 사내아이로 커갔고 여섯 살 무렵부터는 아버지를 통해 서서히 사회의 질서에 편입되며 ‘남자’가 돼 갔다. 모성의 공간에서 ‘동굴 속 황제’로 자라나 아버지의 권위를 본받으며 한국사회의 신분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학도인 저자(성공회대 연구교수)는 ‘한국문화의 구조적 특징’을 연구하다가 한국문화의 부정적 특징이 바로 자신에게 그대로 배어 있음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연구 관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책은 5세부터 12세까지 그의 성장에 대한 기록과 분석을 담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섬세한 시선과 생동감 있는 문체로 자신이 관찰한 자기의 성장체험을 서술했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을 분석의 기본틀로 이용한다. 어머니의 영역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는 과정에서 아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며 아버지와 경쟁하고 나아가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한국 남자의 특성이다. 한국에서 한 아이가 ‘남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프로이트의 생각처럼 ‘나-어머니-아버지’라는 핵가족의 작은 삼각형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확대된 ‘나-가족-국가’가 연쇄적 관계를 맺는 한국적 상황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적 상황에서는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들이 아버지에게 일대일로 직접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한국사회의 권위적 구조 속에 위치한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버지는 프로이트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적 이미지로서의 어머니를 아들에게 다 내어주고도 유유자적하게 권위를 누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남자아이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동굴 속 황제’로 자라나 아버지의 권위를 부러워하고 또 한편으로 이를 본받는다. 또한 아버지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상속하며 아버지가 세운 신분적 질서를 계승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적 신분질서가 재생산된다.

저자는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둥글게 둘러앉아 놀이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커뮤니케이션’의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 안의 아버지, 네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 형성돼 있는 어린 시절 우상으로서의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긍정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 책은 물론 개인사 중심의 분석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한국 농촌 지역의 봉건적 가정에서 자란 개인의 체험을 한국사회 전체로 지나치게 일반화하기도 하고, 어느 집단에나 있는 ‘인정(認定)투쟁’을 한국적 상황에서 지나치게 특수화하는 경향도 있다. 또한 그런 문화가 형성되게 된 정신문화적 배경에 대한 탐구가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1960년대 한국사회에서 ‘한 남자의 탄생’에 대한 자기 관찰을 통해 전근대적 성격의 근원을 구체적으로 파헤쳤다는 점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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