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재경부 집값 전망 '아전인수 셈법'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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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는 30일 ‘연도별 주택 관련 주요 지표 추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주택 건설량이 약 3년의 시차를 두고 집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2001년 이후 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난 만큼 내년부터는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분 좋은 소리다. 그것도 경제정책 ‘수장(首長) 부처’인 재경부의 분석이니 ‘무조건’ 믿어 보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경부는 ‘산수(算數)’를 잘못했다. 보고서는 주택공급량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주택은 움직일 수 없는 ‘부동산(不動産)’이기 때문이다.

2001년 서울에서 새로 공급된 아파트는 95년의 60%선에 그쳤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수도권이 아닌 한 집값은 항상 불안하다.

‘실수’는 또 있다. 주택 수요가 아파트에 집중돼 있는데도 재경부는 다세대·다가구주택과 단독주택을 포함한 총 공급량을 분석 자료로 삼았다.

95년 전체 주택 공급량에서 다세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였지만 작년에는 33%로 치솟았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은 지금도 남아돈다.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분쟁이 일어날 정도다. 하지만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재경부는 향후 주택공급량도 감안하지 않았다. 집값을 잡으려면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매년 30만가구 정도의 신규 주택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준농림지 개발이 묶여 있고 재건축 아파트 공급도 앞으로 크게 줄 전망이다.

신도시 2곳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나올 아파트는 20만가구 정도다. 그것도 시차를 두고 분양된다. 주택 문제를 해결할 절대적 대안은 되지 못한다. 건교부 당국자도 당장 내년 주택 공급을 걱정할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재경부는 ‘보고 싶은 현실’만 보려 했다. 그것도 ‘숫자’만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잘못을 드러냈다.

한 민간 연구소 주택정책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외환위기 때 정부는 주택을 ‘소유 대상’이 아닌 ‘이용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설득했지요. 집으로 돈 벌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주식을 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지요.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집값 전망도 자칫 ‘경제적 범죄 구성요건’이 될 수 있습니다.”

집값 안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숫자 놀음’만으로 집값을 잡겠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지나친 낙관은 ‘의도된 실수’로 비쳐질 수도 있다.

고기정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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