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진보와 그의 적들'…환경지상주의가 진보막는다

  • 입력 2003년 4월 18일 17시 50분


코멘트
‘진보와 그의 적들’에서 소르망은 체세포 복제, 핵발전소 등 ‘위험할 수 있는’기술들에 적의만 나타내기 보다 이 기술들이 인류에게 가져올 수 있는 혜택을 엄밀하게 계산해보자고 제의한다. 체세포복제로 탄생한 복제양 돌리 모녀(왼쪽)와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호주 반핵운동가들의 시위(위).동아일보 자료사진
‘진보와 그의 적들’에서 소르망은 체세포 복제, 핵발전소 등 ‘위험할 수 있는’기술들에 적의만 나타내기 보다 이 기술들이 인류에게 가져올 수 있는 혜택을 엄밀하게 계산해보자고 제의한다. 체세포복제로 탄생한 복제양 돌리 모녀(왼쪽)와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호주 반핵운동가들의 시위(위).
동아일보 자료사진
◇진보와 그의 적들/기 소르망 지음/338쪽 1만4000원 문학과 의식

‘대체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1962년 필리핀에 국제쌀연구소(IRRI)가 설립되자 환경운동가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펼친다. 벼 품종의 인위적인 교배로 각 지역의 특산 종자가 사라질 것이며, 들판에 흘러나온 신품종이 생태계를 파괴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연구소는 문을 닫는다. 70년대에 이르러 동남아 인구가 수용 가능한 선을 넘어서면서 각국에서는 기아와 내전이 빈발한다. 인구성장도 멈춘다.

물론 이는 상상에 불과하다. 녹색혁명에 힘입어 그동안 동남아 인구는 20억명 이상 증가했다.

“진보를 택할 것인가? 원시시대로 회귀할 것인가?”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이자 대표적 ‘미디어 지식인’으로 불리는 기 소르망이 이번에는 환경운동에 대해 견해를 쏟아놓았다. 책 제목에 쓰인 ‘진보’는 평등주의적 이념과 거리가 멀다. 그가 말하는 ‘진보’는 기술문명의 발전과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올 혜택을 뜻한다. 합리성에서 동떨어진 환경지상주의가 그의 ‘적’이자 표적이 된다.

먼저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해. 통념과 달리 GMO는 대부분 훨씬 적은 살충제만으로 재배가 가능하므로 실제로 환경친화적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종자를 비싸게 판다고 하지만, 그 종자를 사서 수익을 늘릴 선택권은 농민에게 있다.

핵발전소는 어떤가.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의 가능성이 가장 적은데도 환경운동가들은 그 위험성만을 과장한다. 그러나 엄격히 관리되는 핵발전소보다 파리의 화강암 보도 위가 더 방사선 조사량이 크다. 화력발전소를 대체하므로 온실효과의 위협도 줄여준다(그에 의하면, 실제 온실효과도 엄밀한 ‘검증’과 거리가 먼 이론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운동가’들을 움직이도록 하는가. GMO의 주된 반대자는 기존 농산품을 특화 재배하는 계층 또는 국가다. 과거 사회주의에 경도됐던 사람들이 자유시장경제에 반대하기 위해 환경운동을 이용한다는 분석도 곁들여진다. 많은 경우 이들은 민감한 분야의 민감한 변화를 확대 과장하거나 위협을 유포시키는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으므로 ‘반과학적’이라는 질타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신기술의 적은 ‘PP(Principle of Precaution·신중의 원칙)’이다. ‘모든 새 기술은 그 무해함이 증명되기 전에는 위험스러운 것으로 여겨야한다’는 것이 PP의 개념이다. 그러나 PP를 따랐다면 파스퇴르의 백신 실험도, 퀴리의 라듐 발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학적 연구를 지체시킨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다’. 금세기에 수십억 이상 늘어날 세계 인구를 생각할 때도, GMO 이외의 대안은 없다.

그러나 저자는 ‘녹색’ 이념 대신 ‘백색’ 신자유주의만으로는 미흡하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양적(量的) 추구에 따른 비(非)양적 가치의 상실이란 결점을 갖고 있기에, 녹색의 건전한 비판을 수용한 ‘청색’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서 청색 이념이란 흰색에 건강, 수명 등 인간적 가치를 더한 ‘품위를 가진 자유주의’로 읽혀진다.

글을 맺기 전에, 소르망의 식견을 상기하기 위해 그가 9·11테러 이틀 뒤인 2001년 9월 13일 발표한 글을 살펴본다. “미국과 테러리즘의 전쟁터는 어디가 될 것인가. 바그다드와 카불 어딘가가 될 것이다. 미국은 승리를 거둘 때까지 전쟁을 치를 것이다. 유럽과 러시아는 유화정책을 강조하겠지만, 결단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