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자기 숙제는 미루는 與野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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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열린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한목소리로 문제삼았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중앙선관위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질의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15일’이 갖는 의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날은 선거법상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해 국회의장에게 보고하는 법적 시한이었다. 현행 선거법 24조엔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해 늦어도 총선거 1년 전까지 국회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선거일 1년 전에 선거구획정안을 미리 확정함으로써 선거일에 임박해 벌어질지도 모를 정치권의 ‘밀실 야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게 입법 취지였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노력은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7일 총무회담을 갖고 “정치권 3인과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 4인을 참여시키는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구성토록 한다”고 합의하긴 했다.

하지만 여야는 획정위에 참여할 위원조차 아직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모두 내심으로는 그 짧은 기간에 ‘민감한’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듯하다. 이번 합의가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일시적으로 모면해 보려는 ‘면피용’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9일 정국 현안에 대해 협의했으나 총무회담 논의 수준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에선 아예 논의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물론 정치권도 할 말이 있을지 모른다. 선거구획정위 관련 규정이 법적인 강제조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선거구획정 문제는 여야가 선거제도의 변화 가능성과 의원 정수 조정 문제 등 큰 틀에서 합의점을 찾은 뒤에야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정치권은 그동안 법과 원칙에 의한 입법 활동을 천명해 왔지만 정작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 왔다. 비록 권고사항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입법부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의 이런 태도를 문제 삼아 14일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민주당 총무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원칙을 지키는 국회상을 보고 싶다.

정연욱 정치부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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