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이라크의 반달리즘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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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영국의 대영박물관을 관람한 뒤 느끼는 공통적인 소감은 무엇일까. 우선 놀라는 것이 정상이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전시돼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진귀한 전시품을 보면서 갖게 된 놀라움은 어느 새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분노로 변한다. 전시실마다 타국의 문화유산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입 기증 등의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것보다 타국에서 빼앗아 온 것으로 여겨지는 전시품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구경을 마친 외국인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게 된다. “도둑놈들!”

▷영토확장과 부의 약탈을 노린 전쟁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프랑스와 영국은 여전히 이집트 그리스 등의 문화유산 반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여기에는 궤변까지 동원된다. 루브르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1863년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사모트라케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발견됐다.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던 여신상은 프랑스로 반입돼 어려운 복원 과정을 거쳐 머리 부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되찾았다. 프랑스인들은 이 걸작을 발굴해서 복원하지 않았다면 한낱 돌조각으로 사라졌을 것이라며 프랑스가 문화유산 보호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반달리즘이라고 불리는 문화유산 파괴와 약탈은 외국을 상대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라크인들이 자국 문화재를 약탈하고 파괴하는 기현상이 빚어져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만 수만점의 유물이 약탈됐다고 한다. 전쟁의 와중에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또는 24년간 학정에 시달린 데 대한 불만으로 관공서를 습격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7000여년 전 조상의 숨결까지 부수는 이라크인들의 행동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라크인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유산을 되돌려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어렵게 됐다.

▷이라크에 앞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파괴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탈레반 정권이 2001년 3월 높이 52.5m와 34.5m인 세계 최대 마애불을 부수자 세계 여론은 일제히 등을 돌렸다. 미국의 공격을 받기에 앞서 탈레반 정권 스스로 불행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세계인들이 탈레반의 불상 파괴에 분노한 것은 이른바 ‘문화유산은 인류공동의 재산’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기껏해야 100년밖에 못 사는 인간들이 역사와 인류 앞에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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