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공작에 수사은폐까지 했나

  • 입력 2003년 4월 1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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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정치는 독재정권이 이 땅에 뿌리내린 음습한 유산이다. 그 독재정권에서 오랫동안 탄압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과 측근 의원이 공작정치 수법을 그대로 본떠 야당 총재를 흠집냈던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전 대통령비서관이 김홍걸 게이트에 관련됐던 최규선씨의 돈 20만달러가 야당 총재에게 전해졌다는 첩보를 손에 넣어 민주당 설훈 의원을 통해 폭로한 과정은 당시 청와대가 정보공작 정치의 전위 역할을 했음을 확인해준다.

20만달러 수수설 외에도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105평짜리 빌라를 빌려 거주한 사실을 터뜨렸던 설 의원은 정보력의 원천이 바로 청와대였음을 법정 진술을 통해 스스로 인정했다. 설 의원의 정당성 없는 폭로로 이 전 총재는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설 의원이 합법적이지 않은 경로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았다면 폭로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선거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며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이후에 청와대가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일을 벌였으니 총재직 사퇴가 기만이었다는 비난을 들을 만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 게임’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지난 정권에서 정보기관들이 정치활동 금지 법규를 어기고 청와대에 정치공작적 보고를 계속했음을 시사해준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하고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院訓)을 고쳤다. 그러나 간판과 구호만 바뀌었을 뿐 음지에 숨어 양지를 저격하는 수법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김현섭 전 대통령비서관에 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확인하고서도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설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검찰은 전 대통령비서관과 여당 의원의 공작 커넥션을 백일하에 공개해 음습한 ‘정치 게임’을 실질적으로 종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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