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기자였던 조영동 처장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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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제멋대로, 예고없이 사무실에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은 27일 ‘기자실 개선과 정례브리핑제 도입안’을 설명하면서 공무원 접촉 사전예약제의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은 즉각 “대부분 취재원과 만나기 전 사전에 약속을 한다. 취재원이 바쁘면 지금도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온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조 처장은 “아무튼 아무 때나 사무실에 출입하는 것은 삼가 달라”고 말했다.

조 처장은 기자 경력 22년의 언론인 출신이지만 이날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 금지조치를 발표하면서 그래야 할 이유를 제대로 대지 못했다. 조 처장이 한창 기자로 일하던 1980년대만 해도 기자들이 예고없이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공무원을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제멋대로’ 사무실에 들어가 취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 초 언론의 가장 치열한 취재 대상이었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금지한 것도 설익은 정책이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 기자들이 ‘제멋대로’ 출입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조 처장은 이런 말도 했다. 그는 브리핑제 강화 방안을 묻는 질문에 “공보관은 지금과는 다르게 능력있고 뛰어난 사람이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공보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그동안은 유능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보관을 맡아 왔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브리핑제는 결국 정부가 알리고 싶은, 그리고 입맛에 맞는 것만 브리핑하려는 게 아니냐” “기자와 만난다는 사실이 다 알려지는데 공무원들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조 처장도 답답한 듯 줄담배를 피웠다.

조 처장은 1988년 부산일보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내면서 파업을 통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편집국장 3인추천제를 만들 정도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이번 취재 제한조치의 입안책임자가 됐다는 것을 언론사(言論史)는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이승헌기자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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