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越權한 국가인권위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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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국회의 파병 동의안 처리를 앞둔 시점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외적으로 사실상의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은 파병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대통령과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은 고도의 국제정치적 의미를 갖는 민감한 외교행위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국가기관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감한 외교 사안일수록 국론 통일이 필요한 터에 국가기관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파병반대’ 공식 통로 거쳤어야▼

둘째, 국가인권위는 정책집행기관이지 정책결정기관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핵심적인 업무는 인권 보호를 위한 집행 업무다. 이라크 파병은 고도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다. 우리 헌법상 정책결정권은 대통령과 국회 및 국무회의의 소관이다. 이들 정책결정기관의 결정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다른 국가기관이 내부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따라서 국가인권위가 대통령과 국무회의가 공식 파병 결정을 하기 전 의견을 대통령과 국회에 내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파병 결정이 있은 뒤 반대 취지의 성명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의사 표명의 시기와 방법 면에서 사려 깊은 행동이 아니다. 결정된 정책에 대해 정책집행기관이 사후에 성명서 형식으로 딴죽을 거는 것은 월권행위로 보아야 한다.

국가인권위는 조직상 독립기관이지만 국가 예산에 의해 설립 운영되는 국가기관인 이상 시민단체와는 달리 그 정책투입(input)은 어디까지나 정부 내의 공식 통로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인권위가 성명 발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우리 헌법의 국제평화주의는 일차적으로 통치구조 내에서 정책결정기관에 대한 헌법의 명령이기 때문에 정책집행기관에 불과한 국가인권위가 이 헌법 규정을 내세우는 것은 법리상 옳지 않다. 인권 향상을 위한 국제기구 및 외국 인권기구와의 교류와 협력 등은 법이 국가인권위에 허용한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정책 집행의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셋째, 국가인권위는 우선 국내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지 부적절한 성명 발표 따위에 업무 추진력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2001년 국가인권위가 설립될 정도로 우리의 인권 상황은 아직도 개선할 여지가 많고, 인권의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사법절차에서 여전히 신체의 자유가 충분히 보호되지 않고,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국가인권위는 우리 국민과 우리나라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의 인권 보호와 향상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튼튼히 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기관이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는 이라크 파병문제에 신경 쓰기보다는 법이 정한 설립 목적과 적용 범위에 합당하게 국내 인권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보여야 한다.

▼국내-북한 인권등 할 일 많은데…▼

넷째, 국가인권위의 성명은 이 기관이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한 것과 균형이 맞지 않다. 북한 주민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 주민이 최악의 독재정권 아래서 인권을 무시당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인권기구 등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는 진작 국제인권기구와 협력해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여러 나라에 정처 없이 유랑하는 많은 탈북 주민들을 우리 정부가 모두 받아들이도록 촉구했어야 한다. 나아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운용되도록 권고하는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라도 했어야 한다.

국가인권위가 당연히 해야 할 이런 일들은 외면한 채 증가하는 반전 여론에 편승해 권한 밖의 일에 성명서를 발표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허 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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