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상영/인식전쟁

  • 입력 2003년 3월 2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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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은 시작도 되기 전에 세계를 둘로 갈라놓았다. 미국은 유엔 승인 하에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닥쳐올 위험을 미리 제거한다’는 선제공격 전략에 입각한 전쟁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미국 영국과 이라크가 치르고 있는 이번 전쟁에서는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이라크가 수세에 몰리면서도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명분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진짜 전쟁터 뒤에서 벌어지는 이런 또 하나의 싸움을 ‘인식전쟁(War of perceptions)’이라고 표현했다. 이라크 국민의 해방과 국제적 안전보장을 위한 전쟁인지,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인지에 대한 성격논쟁인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향후 국제 역학관계와 미국의 위상에 영향을 주는 논쟁이기도 하다. 이 신문은 ‘인식전쟁’의 승패를 가름할 요인으로 사상자수,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 전후 이라크 석유 관리, 전쟁기간 등을 들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미국은 진짜 전쟁에서 승리해도 ‘인식전쟁’에서는 지게 된다는 것이다. 전후(戰後)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마음대로 요리해도 석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반전론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이라크전쟁은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격렬한 반전 시위를 불러일으킨 전쟁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유럽 아시아 중동 남미뿐 아니라 전쟁 당사국인 미국 영국에서도 수많은 시민이 반전시위에 가담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오대양 육대주의 수십개 국가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진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세계가 좁아져 지구촌(地球村)이 됐음을 실감케 한다. 마지막까지 전쟁 방지를 호소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이라크 평화를 위한 기도회에서 이교도인 이라크 국민에 대해 “정신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은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을 지지한 30개 국가 중 하나이지만 역시 반전 여론이 만만치 않다. 25일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지는 파병동의안에 대해서도 각계각층의 찬반논란이 한창이다. 과연 어느 쪽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판단도 서로 다르다. 여당 안에 반대론자가 있는가 하면 야당에도 찬성론자들이 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이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는 명분과 북한 문제를 눈앞에 둔 현실론을 모두 충족시킬 묘안은 없는 것일까.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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