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대통령만 있고 장관은 없다

  • 입력 2003년 3월 18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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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한쪽으로 집중되면 위험하다. 권력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 견제가 없는 권력은 엇나가기 쉽고 결국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역대정권에서 권력의 일방질주가 백성들을 얼마나 고단하게 했는지 떠올려보면 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선 이후 여러 차례 권력의 나눔, 특히 대통령과 내각의 분권(分權)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도 절대권력이 초래한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달 초 각료들과의 국정토론회에서도 “국무총리나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라며 “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위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말과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에는 아직도 거리가 있다. 국민의 눈에는 모든 힘이 여전히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취임 후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이 과정에서 많은 말을 하고, 그것이 언론에 자주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긍정 부정의 시각이 엇갈리는 노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만 해도 그런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했다. 이 토론 후 많은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만나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니 장관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진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여러 자리에서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가 바로 ‘대통령만 있고 총리나 장관은 없다’는 말이다. ‘총리를 TV에서 본 지 오래’라거나 ‘고건 총리의 언론 등장 빈도가 서울시장 때보다도 못하다’는 얘기도 나돈다.

사람들의 이런 말 속에는 대통령의 독주(獨走)와 독점(獨占)을 경계하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내각이 해도 될 일까지 맡아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 부처에 언론의 오보에 적극 대응하고 조치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토록 한 것이나, 경부고속전철 특정구간 공사중단을 지시한 것 등이 이런 범주에 든다. 외교안보분야에서도 장관이 했으면 좋을 말을 직접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부총리가 밝힌 법인세 인하 방침이나 농림부의 대북 쌀 지원 보고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뒤집은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정책혼선은 혼선대로 부르면서 모든 것은 결국 대통령이 결정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각료들은 마음대로 숨을 쉬기 어렵다. 장관들이 무슨 정책을 내놓았다가 혹시라도 대통령이 제동을 걸어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나 한다면 어떻게 정부부처를 통솔할 수 있겠는가. 장관이 소신을 갖고 일하도록 한다며 부처를 관할하는 대통령수석비서관실을 폐지한 취지와도 맞지 않다. 관료들은 ‘수석 시어머니’가 없어지더니 ‘대통령 시어머니’가 새로 생겼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집권 초기라고 해도 대통령의 지나친 일 욕심과 이에 따른 언론 전면 노출은 과거 제왕적 대통령시절을 연상시키고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에도 좋지 않다.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국정은 과감하게 총리나 장관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내각이 하기 어려운, 보다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관의 힘이 커진다고 대통령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관이 힘을 갖고 신명나게 일하면 대통령의 힘도 커질 것이다.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권력의 법칙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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