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이라크戰 위기

  • 입력 2003년 3월 1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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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월드컵 축구대회 때의 일이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8강전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사진기자들의 입장 순서를 정했다. 좋은 자리를 향한 치열한 몸싸움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AP AFP 로이터 등 3대 통신사에 이어 스포츠 통신사들, 그리고 경기당사국인 한국과 이탈리아 기자들의 순으로 입장했다.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있는 미국이 세계에서 600여명의 기자들을 종군기자로 모집한 방식도 비슷하다. 이른바 미군과 동숙하면서 취재할 기회를 주겠다는 ‘임베드(embed) 프로그램’이다. 말하자면 경기장에 첫번째 입장할 그룹이다. 이들은 지금 미군의 몸 푸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단, 임베드에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나라의 기자들은 대부분 제외됐다.

그러나 미-이라크전쟁은 먼저 입장한다고 해서 신이 나서 취재할 만큼 흥미로운 경기는 아니다. 미-이라크전쟁은 축구에 비유하면 브라질과, 세계 꼴찌 수준의 부탄은 아니더라도 FIFA 랭킹 100위권인 어떤 나라와의 경기다. 승부는 이미 결정돼 있고 미국이 몇 골을 넣느냐, 연장 없이 빨리 끝내느냐만 남아 있는 셈이다.

관전 포인트는 4개쯤 될 것 같다. 첫째, 100 대 0으로 끝났을 때 과연 독재에 찌들어 있다는 이라크인과 다른 나라의 관중이 미국의 승리에 환호할 것이냐는 점. 둘째는 공을 차다가 유리창을 깨거나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지 여부.

셋째는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디뉴의 현란한 개인기처럼 미국의 첨단무기가 얼마나 위력적이냐는 점. 만약 미군이 정밀 폭격으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혁명수비대만 골라 죽일 수 있다면 전쟁의 성격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넷째는 경기 후 경기장 ‘보수’가 제대로 되느냐는 점. 이번 경기장은 이라크다. 미국은 보수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하지만 자칫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경고처럼 중동의 유고슬라비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중동의 화약고를 건드린다는 뜻이다.

결국 이번 경기는 승부보다는 경기 외적인 변수가 더 중요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쿠웨이트=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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