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문건/과감한 적자재정 편성을

  • 입력 2003년 3월 9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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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들어 경제 상황이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다. 당초 우리 경제는 금년 중 5%선의 잠재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중 4%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 만큼 대외 경제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돌이켜보면 수출에서 최대 단일 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수입 품목인 원유 가격의 급변동이 97년 이후 우리 경제의 운명을 결정해 왔다. 96년 두 제품의 상대가격 변동으로 교역조건이 9.5%나 악화되자 한 해 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도 미국 정보기술(IT)산업 버블의 붕괴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으로 또다시 교역조건이 12.4%나 악화되자 우리 경제는 위기는 아니더라도 급격한 경기 둔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경기활성화 적극대책 시급

금년 들어서도 이미 이라크전쟁 우려로 국제유가(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기준)는 2000년보다 높은 배럴당 37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제 반도체 가격도 같은 해 미국 IT산업 버블이 붕괴되었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금년 들어 주력 수출품인 256DDR D램 기준으로 생산원가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러한 교역조건의 악화와 더불어 한국 경제는 국제 지정학적 요인으로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가격 충격이 일시에 그치지 않고 금년 중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외국 유수 예측기관들의 전망이다. 더욱이 연초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융시장이 또다시 경색되고 있고 내수경기도 급락하고 있어 금년 중 한국 경제는 생산 기준으로 소폭의 성장을 하더라도 소득 기준으로는 정체 내지는 추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분명한 사실은 이라크전이 미국의 의도대로 단기에 종료되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으로 안정되면서 금년 하반기 IT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손놓고 관망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악화되고 있는 소비와 투자심리를 진정시켜 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경기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고민은 마땅한 경기대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1998년 경기 급랭시 초저금리 정책을 근간으로 한 유동성 공급 확대로 IT투자 붐을 일으켰고, 2001년에도 저금리 정책기조를 가속화해 소비 붐을 유도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IT경기 불황 지속과 가계 부실 문제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정책을 가동하기에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미 시중에 불확실성의 증대로 300조원 이상의 과잉 유동성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초저금리 단기상품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인하는 유동성 공급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는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안정에 경기대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금 세간의 판단은 이미 지난해 결정된 예산의 조기 집행만으로는 현재의 경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과감하게 적자재정을 편성해 실행해야 한다. 이때 일시적 재정적자는 앞으로 3년 이상의 중기 재정안정계획을 통해 균형재정으로 탈바꿈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는 소비와 건설경기 부양을 지양하는 대신 어려움에 처해 있는 IT기업들의 수요 창출을 위해 IT 투자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솔선해 ‘전자정부(e-Government)’ 실현을 가속화하고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해소에도 기여해 IT산업의 성장 기여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금리정책 이미 한계 부딪혀

그리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법인세 문제도 연간 소득액 기준으로 1억원 이상 기업의 세율이 27%로 중국 홍콩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실정을 감안해 한시적으로라도 낮추어 기업의 현금 흐름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 여력을 보강해 주어야 한다.이렇게 해야만 금년 중 최소한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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