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62…1933년 6월 8일(7)

  • 입력 2003년 3월 9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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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어머니라면 절대 용서 안 한다. 손자는 손자고 서방은 서방 아이가.” 종실과 나이는 같은데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표정인 진송은 옆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종실의 머릿기름 냄새를 맡고, 아직 햇볕에 타지 않은 가냘프고 하얀 목덜미를 훔쳐보았다.

“뭐를 용서 안 하는데?” 종실은 빨랫감을 치대면서 물었다.

“아이고, 시어머니한테 의논 한 마디 안 하고 의사 불러서 주사 맞혔다 아이가. 상식이재, 단독은 주사 맞으면 안 된다는 거.”

“고부지간에 얼매나 사이가 좋은데. 산달이 돼서는 희향이가 시장에서 잉어까지 사다가 고아 먹이더라.”

“어데, 사이 안 좋다는 게 맞는 말인갑든대. 가게에서 먹고 자고, 밥도 같이 안 먹으니께네.”

“나 같으면 죽을 때까지 용서 안 한다” 진송은 거칠게 미나리를 잡아 뽑았다.

“눈앞에서 쓰러졌으니까, 당황해서 의사 부른 거 아니겠나? 나라도 그카겠다.” 종실은 두 손을 물에 담근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쌍한 건 딸이다. 소원이의 시신이 떠오른 날에 태어나서, 백일은 또 이씨 아저씨가 죽은 열여드레 뒤에 맞았재, 태어났을 때나 백일 때나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았다, 아이고 가엾어라!”

“오늘은 다들 기뻐하겠네, 그래도 장남이니까네.”

“희향이도 소원이가 죽은 후에는 정신이 나갔는가 좀 이상터니, 이씨 아저씨가 죽은 다음에는 빠릿빠릿해졌다 아이가.”

“그 부부는 영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네.”

“온 동네에 유명했재. 삼나무 집 여자한테 매일 드나들고, 딸까지 낳게 했으니….”

“시집 갔다고 하는 것 같던데.”

“서른 네 살에 간신히 머리를 올린 기라.”

“기생처럼, 비취 비녀에 은 노리개에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끼고, 치장이 말도 아니라 카더라.”

“친척한테 맡긴 동아관(東亞館)에도 빤지르르한 기생만 모아놨다고 카더라.”

“아이고 파리보다 기생이 더 많은 진주(晋州)만큼은 못하겠지만도, 밀양 하면 옛날부터 기생으로 유명하다 아이가. 계향이란 이름으로 자자한 배정자(裵貞子)도 한때 밀양에서 살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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