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이라크 고대 문화유적을 찾아서

  • 입력 2003년 3월 6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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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이자 ‘천일야화’에 나오는 신드바드의 고향인 이라크. 수메르와 함무라비 법전, 아시리아 등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과 영국의 대이라크 공격이 임박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에는 평범한 언덕이 하나도 없다. 당신이 언덕을 본다면 그것들 대부분이 고대 촌락이나 고분임을 기억해 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거 이라크는 세계문화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면 정밀폭격을 한다 하더라도 이라크 고대 유적이 손상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라크에는 어떤 문화유적들이 있을까.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 직후인 1989년과 걸프전(1991) 후인 1996년 이라크 유적지를 둘러본 문명비평가 권삼윤씨의 글과 사진을 싣는다.》

‘낮은 땅’ 또는 ‘떠오르는 태양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어나 꽃을 피운 문명의 땅이다. 메소포타미아란 그리스어로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두 강 사이의 들녘이란 뜻이다. 두 강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가져다 준 비옥한 충적토가 부(富)의 기반을 이루면서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 문명이 등장했다.

미국의 고고학자 새뮤얼 크레머가 수메르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발견되고, 기록된 것이 최초의 낙원설화 창조설화 서사시 학교 의회제도 설형문자 법전 등 무려 39가지나 된다며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됐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고 있다.

수메르 왕국은 도시국가 형태였다. 그 중심 도시로는 이라크 남부의 우르, 우루크, 니푸르 등이 있었으나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현장에는 허물어진 채 나뒹굴고 있는 흙벽돌 더미와 1970년대 복원한 지구라트(피라미드 형태의 축조물)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메르 문명이 태어난 이라크 남부지역이 공교롭게도 성서에서 인류의 탄생지로 그려진 에덴동산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라크는 성서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수메르의 중심도시 우르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번영하던 수메르는 기원전 1900년경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함무라비법전을 편찬한 함무라비 대왕을 비롯하여 여러 걸출한 군주들을 배출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네부카드네자르 대왕(재위 기원전 695∼기원전 562)인데, 그는 왕도(王都) 바빌론에 대 성벽을 쌓고 산간오지가 고향인 왕비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공중정원(건물의 옥상에 조성한 정원으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을 축조했으며 대운하를 건설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축 사업을 벌였다. 또 성서에 ‘신에 대한 모욕’ ‘인간 허영의 상징’으로 묘사된 바벨탑은 그에 의해 복구되어 바빌론을 빛내고 있었다.

바빌로니아 제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북쪽에는 광대한 영토를 거느린 아시리아 제국이 있었다. 역사에선 이를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제국의 두번째 도읍지였던 니네베(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 한가운데 위치) 왕궁 터에선 ‘나는 강력하다. 정말로 강력하다. 모든 왕 중에서 나와 견줄 자는 아무도 없다’며 자신만만했던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기세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사자 사냥도’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도 님누드 유적 또한 제국의 힘을 느끼게 한다. 허물어지긴 했으나 왕궁 터와 그 정문을 지키던 ‘라마스’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에 독수리의 날개를 단 황소상’을 뜻하는 라마스는 한마디로 말해 수호신상이다. 정문 앞에 두 쌍을 세워놓아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변변한 보호를 받지 못해 퇴락한 모습이긴 하나 이 정도만으로도 번성했던 그 옛날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긴 3000여년 전의 일인데 더 이상 얼마나 번쩍거리겠는가.

그 후로도 이라크 땅엔 로마제국과 힘으로 맞섰던 파르티아 제국이 들어섰고 이슬람의 두번째 왕국인 아바스 왕조는 흙탕물을 튀기며 남쪽으로 거세게 흐르는 티그리스 강변에 외벽 주벽 내벽 등 3중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원형(圓形)의 도시를 새로이 건설하고는 수도로 삼았다. 바그다드가 그곳이다. 이슬람 왕조였던 만큼 알라에게 감사와 구원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도시 한가운데에다 황금빛을 발하는 돔(dome)을 머리에 인 ‘알 만수르 모스크’를, 그 옆에는 칼리프(이슬람 왕조의 왕)의 궁전인 금문궁(金門宮)을 각각 세웠다. 길은 이곳을 중심으로 격자형으로 뻗어 있어 동서남북 어느 곳이나 똑같은 거리를 유지했다. 그것은 이슬람의 평등정신을 상징했다.

바그다드는 아라비아 지역의 이야기 모음집인 ‘아라비안나이트’가 쓰여진 곳인데다 ‘알 미르바드 시(詩) 축제’도 열려 ‘시인이 없는 나라에서는 결코 위대한 군주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을 정도로 이슬람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의학 천문학 과학 수학에서도 최고 수준을 구가했다. 또 무하마드의 후계자인 후세인과 알리가 순교한 땅이라 이라크는 시아파 이슬람의 성지라는 영광까지 누리고 있다.

황량한 사막같이 보이는 이라크 땅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류의 문명사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권삼윤 문명비평가

▼사진설명▼

사진<1>세계최대 미나레트-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20㎞ 거리에 있는 사마라(압바스 왕조시대 한때 수도였다)에는 나선형 구조의 대형 미나레트가 서 있다. 미나레트는 기도시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은 모스크의 부속 건물인데 사마라의 것은 외형이 특이하며, 높이가 36m나 돼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2>수메르의 지구라트- 수메르 문명의 실재를 증명하는 우르의 지구라트. 우르는 아브라함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단 벽면에는 걸프전 때의 탄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 레오나르도 울리는 인근 왕묘에서 45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군기(軍旗)와 하프, 황금 장신구들을 대거 발굴했다.

<3>카드마인 성전- 바그다드의 카드마인 성전. 두 개의 돔과 미나레트의 상단부가 황금으로 도금돼 있어 성전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4>바빌론의 말- 바빌론의 이시타르 성문에 붙어 있었던 광택나는 타일로 만든 말의 모습.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소장.

<5>수호신상-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의 남쪽 교외에 있는 님누드 궁전 유적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상 ‘라마스’. 늘 쌍을 이루고 있다.

<6>수메르의 왕- 수메르 시대의 왕의 조상(彫像).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소장.

<7>하트라의 인물상- 이라크 유일의 세계문화유산인 하트라 성. 기원전 1세기 파르티아 제국이 사막에 세운 캐러밴 도시 하트라에는 특이한 인물상이 새겨진 왕궁 신전이 남아 있다. 인물상 아래의 문자는 예수 시대의 일상어로 쓰였던 아람어다.

<8>니네베의 성문- 니네베 성을 감쌌던 13㎞ 남짓한 성벽에는 15개의 성문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남문 격인 시마시 성문으로 최근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세기 말 성문 뒤의 퀸지크 언덕에서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사자 사냥도’가 발견됐다.

<9>이시타르 성문- 바빌론 도성의 정문이었던 이시타르 성문. 벽면에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성물(聖物)로 삼았던 여러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70년대 초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복원한 것으로 진짜 성문은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다.

<10>세계 최초 아스팔트 도로- 바빌론의 남궁전(南宮殿) 앞으로는 너비 20m의 축제도로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로서 석유의 매장 흔적은 그때 이미 나타났던 것이다.

<11>세계최고(最古) 아치형 건물- 바그다드 근교의 크테시폰이란 곳에 서 있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아치형 건물인 ‘타크 이 키스라’. 3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궁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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