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57…1933년 6월 8일(2)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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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나이가 많은 시원(時源)이 찌개를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이씨네에 장남이 태어난 모양이더라.”

“그거 참 잘 됐구마. 안 좋은 일만 많더니.”

“마 이제 이씨네도 팔자가 필 끼다. 사내자식은 복을 부른다고 하니께네.”

“그 집 며느리도 한 시름 놓았구마. 조선시대에는 칠거라고 해서 사내자식을 못 낳는 여자는 소박을 맞아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네.”

“칠거가 뭡니까?” 만식이가 김치를 삼키며 물었다.

“칠거지악이라고, 그거에 해당되면 마누라를 내쫓아도 괜찮은 기라. 첫째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기고, 둘째는 아들을 못 낳는 기고, 셋째는 음란(淫亂)이고, 넷째는 질투, 다섯 째는 병, 여섯째는 말이 많은 기고, 일곱째는 도벽이다.”

“지금도 칠거는 살아 있다. 장씨네 난경이는 딸자식만 셋 낳았다고 쫓겨났다아이가.”

“이씨네 며느리는 공부를 많이 해서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라. 여자가 공부해서 어디다 써먹을 기라고. 여자는 그저 아들 쑥쑥 잘 낳고 밥 잘하고 빨래하고 바느질만 할 줄 알면 그만 아이가.”

“그라고, 색도 좀 알아야재.”

“마누라한테 그런 걸 우째 바라노.”

“아이고 이런 오입쟁이.”

인부들이 일제히 소리내 웃었다.

“심청이처럼 부모한테 효도하고, 춘향이처럼 절조만 굳으면 딸만 있어도 아무 상관없다.”재승(財勝)이 수저를 그릇에 담아 돌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좀처럼 대화에 끼지 않는 재승은 늘 제일 먼저 식사를 끝낸다.

“하기사 재승이 네 놈은 딸만 다섯이니께, 그런 말 할 만도 하재.”

“아이고, 전생에 무슨 업이 그래 많아서 딸만 다섯이고.”

“내는 딸이라도 상관없다.” 정말 불쾌하다는 듯 입이 일그러져, 인부들은 침이라도 뱉고 일어서는 게 아닌가 하고 잔뜩 긴장했는데, 재승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다리 사이에다 두 손을 깍지꼈다.

시원이 화제를 되돌렸다.

“그건 그렇고 이우철이 그 자식, 참말로 대단타. 경상도에서는 당할 자가 없다 안 카더나.”

“뭐가 경상도고, 조선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더라.”

“왜놈한테도 안 진다.”

“말보다도 새보다도 빠르다.”

“하지만도, 아직 아버지 상중인데 달리는 건 어째 좀 그렇다 아이가.” 재승이 누구와도 눈길을 마주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지는 않재, 달려서 슬픔을 이겨내려고 하는 거 아이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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