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칼럼]아마추어들의 사회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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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민이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2대 대통령 자리를 제의했을 때 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내가 물리학에는 프로지만 정치에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에”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인슈타인이 대통령을 맡았으면 이스라엘이 더 발전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정치로 발을 옮겼을 경우 프로를 빼앗긴 인류의 물리학계가 지금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대구참사는 프로정신이 요구되는 자리에 아마추어가 앉아 있을 때 어떤 재앙이 빚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열차를 죽이고 도망가라”고 하는사령실 직원이 있는 한, 승객들이 대피하지 못하도록 마스터키를 뽑아들고 줄행랑을 치는 기관사가 있는 한, 우리는 아마추어들에 의해 언제 어떤 봉변으로 세상을 떠나야할지 모르는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직 거절한 아인슈타인▼

구구단은 외우도록 해도 구급법은 안 가르치는 학교교육이나, 불타는 전동차 안에서 신고를 받고도 긴급 대피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은 119 사령실이나 모두 아마추어들이다. 현장수습에 나선 대구시와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9·11테러 때 미국 사람들은 무려 8개월 동안 흡사 유적 발굴하듯 붓끝으로 일일이 잔해에서 흙과 먼지를 털어 내는 수습작업을 벌였지만 우리네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유골들을 청소용 빗자루로 쓸어내고 쓰레받기로 마대에 퍼담는 것도 부족해 마침내 물청소로 현장을 싹 치워버렸다. 쓰레기더미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과 유품을 찾아내고 오열하는 유족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계속되는 아마추어들의 실수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아마추어의 특징 중 하나는 서툴다 보니까 성급하다는 것이다. 지식의 깊이가 없으니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에 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허둥대다가 엉뚱한 일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개 자신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미숙자들에게 우리는 하루하루 목숨을 걸어 놓고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총체적 아마추어의 국가, 아∼ 대한민국이다.

아마추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마추어가 있고 프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프로가 있어야 세상은 아름답다. 제 자리가 아니라면 거기서는 누구나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열차제어 시스템을 개발한 전자공학 교수가 사령실에 앉아 있으면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고, 기관차를 설계한 엔지니어라도 기관사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 또한 아마추어일 뿐이다.

같은 논리로 교수가 행정부처의 요직에 앉았을 때, 민주 투사들이 대통령비서관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새 자리에서는 프로라고 하기 어렵다.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쳐 오기는 했지만, 반체제 시위를 주도해 보기는 했지만, 관직 근처에도 안 갔던 그들의 낯선 국정운영 경험은 지금 막 시작됐을 뿐이다. 지하철 사령실 직원과 기관사의 아마추어적 실수만으로도 그처럼 비극이 컸는데 한 국가의 운영을 맡은 사람들이 만에 하나 실수할 경우 어떤 일이 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요즘 국민이 불안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프로’들의 제자리 찾아줘야▼

물론 누구나 처음에는 아마추어로 시작한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자리가 요구하는 프로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갑자기 주어진 권한의 크기에 도취한 나머지 마음속의 독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마추어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국정의 실패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새 정부 출범 후 요직에 임명받은 인사들은 그래서 상대적으로 프로급인 직업관료의 진언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하게 여론을 읽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나마 존재하던 프로가 소외당하는 사회는 발전의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무슨 이유에서든 배척된 프로들은 사회적 효율성을 생각해서라도 포용되어야 한다. 프로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프로들을 활용하는 것이 아마추어 국가를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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