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허승호/지주회사와 재벌개혁

  • 입력 2003년 3월 2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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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2003년 3월1일은 한국 기업사(史)에서 매우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LG그룹이 국내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완전히 탈바꿈한 날이 3월1일이다. ㈜LG가 바로 그 지주회사. 49개의 LG계열사 중에서 LG전자 LG화학 LG칼텍스정유 등 34개사가 그 밑에 편입됐다.

지주회사 출범은 마땅히 축하할 사건이다. 한국의 대기업계열이 ‘재벌’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불투명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소유지배구조 탓이었다. 재벌식 소유지배구조를 탈피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가 지주회사로의 개편이기 때문이다.

재벌식 지배구조의 특징이 무엇인가. 총수가 5% 안팎의 쥐꼬리만한 지분을 가지고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고 계열사간 순환출자, 상호출자 등 난해한 수법이 동원된다. 거미줄 같은 복잡한 출자로 ‘가공(架空)의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다.

계열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오너가 내린다. 그러나 경영책임을 질 일이 생기면 대표이사와 이사회가 진다. 최종결정권을 행사한 오너는 엉뚱하게도 책임을 ‘묻는다’. ‘권한과 책임은 일치해야 한다’는 조직의 철칙(鐵則)이 무너진 것.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사회가 가끔 회사의 이익을 배신하는 것이다. 즉 전체 주주는 손해보고 오너만 이익 보는 ‘못된 판단’을 한다. 오너의 주식을 회사가 비싸게 사주거나, 회사의 주식을 오너에게 헐값에 팔아 문제가 생긴 일들이 그 예다. 나아가 총수 독단, 분식회계, 경영 불투명, 주주 무시, 선단(船團)식 경영…이런 것들이 다 재벌식 경영의 특징 아닌가.

물론 지주회사가 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공자본이 사라지면서 ‘지분만큼 지배하고, 권한만큼 책임지는’ 체제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딛는 것만은 틀림없다.

지주회사에는 혜택도 있다. 연결납세가 인정되는 것이다. A, B가 계열사이며 A는 100억원 순이익을 냈고 B는 100억원 순손실을 냈다고 하자. 연결납세가 허용되면 A, B사를 한 묶음으로 보아 법인세를 안 내도 된다.

이 때문에 많은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를 원한다. 문제는 지주회사로 가기 위한 요건이다. 현재 한국은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 주식은 50% 이상을, 등록 자회사 주식은 30% 이상을 소유해야만 하도록 하고 있다. 지주회사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이 조건 때문에 포기하는 그룹이 많다.

홍익대 선우석호 교수(경영학)는 말했다.

“연결납세를 허용하려면 계열사간 경제적 법적 동일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주회사의 지분이 매우 높아야 한다는 것은 옳다. 그렇지만 기업의 투명경영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가 필요하다면 그쪽으로 갈 수 있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문턱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5년쯤은 30% 지분도 인정해주고 그 후 단계적으로 높이면 어떨까. 대기업들이 그동안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재벌’이란 이름으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기업에도 나라에도 손해다.”진짜

재벌개혁은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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