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문제점]'허둥지둥 5분' 참사 키웠다.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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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진압 후 작성된 전동차 출입문 개폐현황. 열려있는 문들은 소방관들과 일부 승객이 레버를 당기거나 파손한 문들이다.
화재 진압 후 작성된 전동차 출입문 개폐현황. 열려있는 문들은 소방관들과 일부 승객이 레버를 당기거나 파손한 문들이다.
“아, 아, 연기가 나고 엉망입니다.”(1080호 전동차 기관사)

“침착하게, 침착하게 하세요. 아! 여보세요?”(종합사령실)

20일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사고대책본부가 공개한 1080호 전동차와 종합사령실간의 무선교신 내용은 아비규환으로 돌변한 중앙로역 사고현장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교신 내용은 사고당일 오전 9시57분부터 10시2분까지 기관사와 사령실이 허둥대며 신속한 조치를 하지 못한 사실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단독입수]화재진압 직후 사고현장

이 때문에 당초 불이 난 1079호에 비해 뒤늦게 도착한 1080호의 승객이 더 많이 희생됐다. 경찰조사 결과 사망자 133명 가운데 1080호 승객은 95.4%(127명)에 달했다. ‘프로’답지 못한 지하철 관계자들의 실수가 숱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18일 사령실은 불이 난 지 3분 뒤인 오전 9시55분, 화재발생 사실을 전체 전동차에 알렸다. 그러나 사령실은 화재의 규모와 정확한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더구나 대구지하철공사의 ‘소방안전대책’(화재초기진압이 실패할 경우 사령실은 후속열차의 운행을 중지하거나 진입하는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킨다)도 지키지 않았다.

1080호 전동차가 ‘불구덩이’인 중앙로역에 정차한 이후 상황은 더 꼬였다. 기관사와 사령실은 대책을 논의하느라 갑론을박하다 승객의 생명을 살리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단전이니까”(기관사) “계세요”(사령실)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이미 끊겨버린 전력이 다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기관사는 다시 “급전되었다”며 출발하겠다고 보고했고, 사령실은 “그럼 발차”라며 전동차를 화재현장에서 ‘이동’하는 데만 급급했다.

결국 5분간 기관사와 사령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불길은 더욱 번졌고 승객들은 뒤늦게 탈출에 나섰지만 역을 가득 메운 유독가스에 쓰러져갔다.

더구나 전원이 차단되면서 객차 문도 열리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10시2분 마지막 교신에서 사령실은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 문 열어놓고, 안내방송 잘하고…”라고 지시했다. 기관사 최상열씨(39)도 경찰에서 “문을 연 뒤 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6량의 객차 중 4, 5호차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이곳에서만 50여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1080호 전동차 안에서 사망한 79명의 64% 이상이 한 곳에 몰려있었던 것이다. 오전 10시2분 교신을 끝으로 기관사 최씨는 사령실의 호출에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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