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주가는 귀신도 모른다…힘얻는 '랜덤워크'이론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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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하나. 1970년대 미국에서 한 증시전문가의 실험 결과 다트게임(화살 던지기)으로 선정된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시장 평균보다 10% 높았다.

사례 둘, 2001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주관으로 원숭이, 펀드매니저, 아마추어 투자자가 주식투자 수익률 게임을 벌였는데 원숭이가 1등을 했다.

사례 셋, 지난해 영국에서 다섯 살 어린이, 증권전문가, 점성술사가 주식투자 수익률 게임을 했는데 어린이가 1등을 했다.

증시 역사에 오래 기억될 이 세 사례는 랜덤 워크(Random Walk) 이론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미국 프린스턴대 버튼 맬키엘 교수가 증시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이 이론의 내용은 ‘주가는 늘 제멋대로 움직이므로 절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주가가 술 취한 사람처럼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뜻에서 우리말로 ‘취보(醉步) 이론’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주가는 예측 불가능하다〓한국 증시에 랜덤 워크 이론이 가장 잘 들어맞는 사례로 전문가들은 종합주가지수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종합주가지수를 움직이는 원인은 수만개가 넘는다. 한국경제 전반, 금리, 환율, 세계경제 등 거시 요인과 수백개 개별 기업의 상황 등 미시 요인이 지수에 영향을 준다.

전문가들은 이 많은 정보를 종합해 종합주가지수를 예측하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대부분 틀린다. 오른다, 내린다 둘 중 하나인데도 전문가 중 십중팔구가 틀린다. 연초 전문가들이 주장한 ‘연말 목표 종합주가지수’를 연말에 검토해보면 한 명도 제대로 맞힌 사람이 없는 해가 수두룩하다.

개별 종목 가운데에는 삼성전자가 주가를 예측하기 어려운 대표적 종목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백색가전 디스플레이 휴대전화단말기 반도체 등 4개의 거대한 사업부문을 갖고 있다.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도 수천개가 넘는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대해 나온 수백건의 보고서 중 6개월 목표주가를 비슷하게라도 맞힌 보고서는 단 한편도 없었다.

▽주가는 예측 가능하다〓삼성투신운용 이해균 주식운용본부장은 “한국 증시에는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이 상당히 많다”고 말한다. 이런 종목을 사서 오래 기다린다면 주가는 결국 기업가치를 찾아 오른다는 주장.

기업의 실제 가치와 현재 주가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면 주가는 얼마든지 예측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그는 이렇게 저평가된 종목을 골라 기다리는 방식으로 수년째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동원투신운용 이채원 본부장도 마찬가지 견해. 그는 사업구조가 간단한 중소형주에 집중 투자한다. 2000년 롯데칠성과 농심 등에 집중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다.

그는 “중소형주일수록 주가 예측이 쉽다”고 말한다. 기업가치 분석도 어렵지 않고 적정 주가 산출도 비교적 간단하다. 적정주가가 5만원인데 지금 주가가 2만원이라면 ‘이 종목 주가는 언젠가 오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예측은 대부분 들어맞았다.

▽정보의 효율성 차이〓버튼 맬키엘 교수의 랜덤 워크 이론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모든 정보가 모든 투자자에게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전달된다면…’이라는 전제다.

종합주가지수나 삼성전자처럼 주가를 결정짓는 정보가 수만개가 넘고, 그 움직임을 예측하려는 전문가가 수천명이 넘으면 실제 주가는 제멋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정보를 수많은 전문가가 깊게 연구한 결과가 거의 매일 수십만 투자자에게 발표되기 때문에 주가가 펀더멘털에 비해 더 오르거나 덜 오르거나 할 여지가 거의 없다. ‘모든 정보가 모든 투자자에게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전달된다’는 전제가 만족되는 셈.

반면 1년 동안 전문가 보고서가 한 편도 안 나오는 중소형주 가운데에는 주가를 예측할 수 있는 종목이 많다. 주가를 결정짓는 정보가 몇 개 안 되는 데다 이마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공개되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정보가 수두룩하다. 이를 누군가 먼저 정확하게 해석해 낸다면 그 사람은 회사의 주가를 먼저 예측할 수 있다는 것.

LG경제연구소 배수한 연구원은 “취보 이론은 경우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며 “정보가 효율적인 대형주일수록 주가를 예측할 때 ‘감과 느낌’을 많이 써야 하고, 중소형 비인기주일수록 직선적인 펀더멘털 분석 능력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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