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임채정/‘83학번 노무현’

  • 입력 2003년 2월 18일 19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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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가 최종학력인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 대학 학번을 부여한다면 운동권 기준으로 83학번쯤 될 것이라는 몇몇 여권인사들의 얘기는 그럴듯하다.

노 당선자가 시골에 별장 하나쯤 갖는 것이 당연시됐던 돈 잘 버는 변호사에서 사회현실에 눈떠 늦깎이 노동운동투사로 변신한 것이 83년이었다. ‘타는 목마름으로’나 ‘아침이슬’ 같은 그의 애송시와 애창곡엔 그 시절 감성이, ‘토론공화국’을 주창하는 그의 적극적 토론자세나 직설적 화법엔 그 시절 격정이 담겨 있다. 핵심측근들 중에도 이광재 안희정씨 등 83학번이 많다.

보통 83학번이라면 올해 38세나 39세로, 노 당선자(57세)와는 20년 가까운 차이가 있다. ‘의식화 학번’과 자연연령의 괴리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그에 대한 세대별 시각과 무관치 않을 듯싶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반노(反盧)’ 진영의 이영작 박사(63·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가 한 인터뷰에서 언급한 노무현관이 흥미롭다.

“그(노 당선자)는 나와 동년배에 가깝지만, 386세대와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니 내가 내 아들 말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노 당선자의 퍼스낼리티에 대한 논란은 뜨겁다. 한쪽에선 아직도 변치 않는 그의 열정과 신념에 기대를 걸고, 다른 한쪽에선 연륜에 알맞게 ‘풍화(風化)’되지 않은 감성과 논리를 우려한다. 막노동꾼에서 판사로, 시국사범에서 청문회스타로, 낙선의원에서 대통령으로,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좌절과 비상(飛上)을 반복한 그의 이력 자체도 경이와 동시에 불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단층적(斷層的)인 급격한 변화와 성취에 익숙한 노 당선자가 자칫 의욕과잉과 자신감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다. 또한 80년대 거리와 일터와 감옥에서, 독재에서 민주로 역사의 극적인 반전을 지켜보았던 그가 혹시 지나친 자기확신과 이념적 편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다.

경험 있는 관료는 일절 배제한 채 자신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노무현 사람들’로 가득 채운 청와대 비서진부터가 그렇다. ‘단색(單色)의 참모진’은 언젠가 노 당선자의 결단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그 자신이 고백에세이에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3당 합당시 내 주위엔 온통 재야변호사, 학생운동권 출신, 노동운동가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밖에서 본 권력과 안에서 본 권력은 다르고, 80년대와 2000년대 역시 크게 다르다. 386세대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80년대의 열정과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분명 노 당선자의 강점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안팎과 좌우를 두루 살펴야 하는 최고통치자는 조화와 균형을 아울러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화운동을 완결지은 87년 6월항쟁도 운동권의 역량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변화는 바라지만 거칠고 급한 것은 꺼리는 ‘넥타이부대’의 동참 없이 빛나는 결실을 맺기는 어려웠다. 국정이나 개혁도 마찬가지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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