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전갈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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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과 개구리가 함께 물을 건너는 우화가 있다. 개구리는 절대 독침을 찌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전갈을 등에 업었다. 전갈은 “널 찌르면 나도 죽는데 내가 왜 그러겠니” 했었다. 물을 거의 다 건넜을 때 느닷없이 전갈이 개구리 등에 독침을 꽂았다. 개구리가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전갈도 죽어가며 말했다. “그게 내 본성이거든….”

▷전갈은 꼬리에 있는 맹독성의 독침으로 유명하다. 한번 쏘이면 마비되거나 절명한다. 성경에서 전갈이 악(惡)과 사탄으로, 문학 속에선 공격과 복수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인간에게도 전갈과 같은 속성이 있다고 했다. 너무나 무의미한 갈등도 태연히 일으키게끔 운명지어졌다는 점에서다. 진화론에서 볼 때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라면 유전자는 무엇이든 한다. 남을 해코지해서 내게 유리했다면 그 후손은 이런 얄미운 유전자를 갖고 세상을 평정한다. 전갈과 개구리처럼 둘 다 죽는 경우가 없지 않음에도. 더 큰 비극은 선의로 행한 일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데 있다. 트리버스는 한쪽의 이득이 다른 쪽의 이득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어서 인간관계의 갈등은 필연적이라고도 했다.

▷전갈이 독을 쓸 때도 상대에 따라 가려 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브루스 해먹 교수에 따르면 큰 동물을 공격할 때는 강한 독으로, 작은 동물한테는 약한 독으로 공격함으로써 에너지 사용 효율화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 약한 독으로는 짝짓기를 하면서 계속 암컷을 찔러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거기까지가 한계인걸. 교미가 끝나면 암컷은 다른 80여종(種)의 동물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머금고 수컷을 먹어치운다. 임신한 암컷이 애써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 않도록 수컷이 온몸으로 후세를 위한 양식이 되어주는 셈이다. 이것도 인간 세상과 비슷한가. ‘집사람’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바깥양반’은 몸바쳐 일해 가족을 부양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전갈은 싸우기보다는 도망가는 것을 좋아하며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 한 사람을 쏘지 않는다.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전설 속 전갈은 “나를 건드리는 자에게는 죽음을 주겠다”고 했는데 거꾸로 말해 가만히 있으면 안 죽인다는 뜻이다. 반면 인간세상에선 가만있으면 되레 죽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다. 광속으로 달려가는 요즘 세상은 위로 가야하는데 하행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과 같아서 그냥 있다가는 현상유지는커녕 뒤처지기 십상이다. 이쯤 되면 ‘전갈의 미덕’이 부러워진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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