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아도취에 빠지면 다시 경제위기’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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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외환위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던 자아도취에 다시 직면하고 있다”는 외국 언론의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블룸버그통신의 아시아지역 전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옛 망령이 재현되지 않을까 투자자들이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외국 언론의 지적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현 경제상황으로 보아 경청할 대목이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악재에 휩싸여 있다. 유가 불안의 영향으로 무역수지가 3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조짐이고 소매 판매가 4년 만에 감소할 정도로 내수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물가는 큰 폭으로 오르고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를 꺼린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종합주가지수 하락률이 세계 주요증시 가운데 가장 컸다니 해외 투자자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이대로 가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기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공산이 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재정경제부 일각에서 제한적인 부양론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부양책을 거론할 처지조차 못된다. 과거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의 후유증으로 가계부채와 신용카드빚이 지나치게 늘어 부양책을 쓸 만한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 당선자는 단기 부양책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해외 투자자들은 새 대통령이 재벌문제를 비롯한 개혁정책을 마무리하고 노동, 신용대출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 예컨대 강성 노조가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국유화된 은행의 민영화가 지연된다면 투자자들은 다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새 정부가 섣부른 ‘자아도취’에 빠진다면 다시 경제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북한 핵 위협을 극복하고 나면 북한이 아니라 남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비즈니스 위크)는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난 뒤에는 이미 늦다. 뒤늦게 지난 정권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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