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올드미디어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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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도움을 간절히 원합니다.” 지난해 4월 아메리카온라인(AOL)타임워너의 임원들이 미국 아이비리그 경영대학원 학생들 앞에 섰다. ‘AOL타임워너를 살릴 수 있는 전략 콘테스트’를 연 자리였다. 인터넷붐이 절정에 올랐던 2000년 인터넷 서비스업체 AOL이 그보다 네 배나 몸집이 큰 미디어재벌 타임워너를 전격 인수, 사상 최대의 ‘미디어 쿠데타’에 성공한 이래 안타깝게도 주식값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날 2만달러의 상금을 차지한 하버드대 여학생팀의 해법은 다음과 같았다. “신구(新舊) 미디어의 시너지만 믿지 말고 각자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잘해서 수익을 올리는 데 집중하세요.”

▷AOL타임워너는 학생들의 순수하고도 적확한 충고를 따르지 않은 모양이다. 뉴미디어의 정복자이자 인터넷의 총아라고 불리던 스티브 케이스의 회장직 사임은 신구 미디어의 잘못된 결혼이 어떤 종말을 고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1985년 나이 스물여섯에 AOL을 설립한 그는 인터넷의 찬란한 미래를 일찌감치 내다봤던 혁명가였다. ‘닷컴 가이의 승리’를 이끌어 세상을 경악시켰으나 영웅들의 말로가 그러하듯 오만했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인터넷 DNA’를 올드미디어의 TV 영화 잡지 음악 등에 주입해 엄청난 시너지를 내겠다는 장밋빛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

▷합병 당시 ‘왕관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던 AOL은 인터넷의 생명이랄 수 있는 속도에서 수요자들의 욕구를 따르지 못했다.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고 경쟁사보다 요금도 비쌌다. 내실이 따르지 않은 뉴미디어는 광고계와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합병 당시 56달러나 되던 주식값이 13일 15.03달러로 폭락할 때까지 이 회사를 먹여살린 것은 영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케이블TV 드라마 ‘소프라노스’와 ‘피플’ 잡지 같은 올드미디어였다. 그릇이 아무리 번쩍거려도 내용물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시킨 셈이다.

▷케이스 회장의 몰락이 이 거대한 코끼리를 춤추게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뒤를 이을 타임워너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파슨스가 AOL과 이혼할 거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는 실정이다. 세계 2위의 미디어그룹 비벤디 유니버설, 5위의 베텔스만의 사례에서 보여주듯 신구 미디어의 합병은 뉴미디어측의 실각과 올드미디어쪽으로의 회귀로 모아지는 추세다. 아무리 “미디어가 메시지”라지만 미디어를 움직이는 테크놀로지는 결국 수단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건 메시지임을 다시 생각할 때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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