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봅시다]임승남 롯데건설사장 vs 최재덕 건교부차관보

  • 입력 2003년 1월 12일 18시 42분


코멘트
건설업계의 ‘경영 귀재’와 건설교통부의 싱크탱크가 맞붙었다.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왼쪽)은 정부 규제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최재덕 차관보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변영욱기자
건설업계의 ‘경영 귀재’와 건설교통부의 싱크탱크가 맞붙었다.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왼쪽)은 정부 규제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최재덕 차관보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변영욱기자
속내를 털어놓기는 피차 미묘한 시점이었다. 두 달 후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라면 말을 아껴도 모자랄 판이다. 재벌 계열사 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9일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다. 임승남(林勝男) 롯데건설 사장과 최재덕(崔在德) 건설교통부 차관보.

한 사람은 취임 4년 만에 회사를 건설업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린 경영의 귀재다. ‘불도저’같은 추진력은 예순을 훌쩍 넘은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다른 한 사람은 정책 기획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실무형 전문가다. 건교부의 ‘싱크탱크’로 통한다.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아 집값을 잡는 데 성공한 주역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타고난 주량을 자랑한다는 것.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들과 술자리를 같이 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요즘 롯데건설 참 잘 나가더군요. 무섭게 성장했어요.” 최 차관보가 인사를 건넸다.

“허허, 다들 주변에서 도와주신 덕분이죠.” 워낙 넉살좋게 잘 웃는 임 사장이 이번에도 웃음으로 인사를 받았다.

염려와 달리 대화가 잘 풀릴 조짐이다. 자기 분야에서는 고수 반열에 오른 이들이니 인사말만으로도 교감이 통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올해 건교부 정책 기조는 어떻게 됩니까? 주택시장도 상당히 안정돼 건교부로선 짐을 덜었을 텐데….”(임 사장)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 특성상 임 사장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올해는 서민 주거에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국민임대주택을 8만가구 정도 짓고 판교와 화성신도시 건설도 잘 진행해야지요.”(최 차관보)

정책 이야기가 나오자 임 사장이 규제 문제를 끄집어냈다. “주택이 일반 재화와 달리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일관성 없는 정책을 자꾸 내놓다 보니 시장이 크게 휘둘리고 있어요. 풀 수 있는 규제는 풀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민감한 대목이다. 하지만 노련한 최 차관보가 그냥 당하고 넘어갈 리 없었다. 딱 부러진 설명이 시작됐다.

“정부가 최근 여러 대책을 내놓은 건 ‘시장의 실패’ 때문입니다. 작년에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고는 해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주택 수가 부족한 편입니다. 소득 대비 주거비도 선진국에 비해 2배가량 높아요. 장기 임대주택을 충분히 확보하고 주택 공급량을 일정 수준에 맞추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정부 개입은 불가피합니다.”

“건교부 정책에 학점을 매긴다면 몇 점 정도 주시겠어요?” 대화 도중 기자가 임 사장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A학점은 무리고, 그렇다고 해서 낙제점을 주는 것도 공정한 평가가 아니겠지요. 허허.”

최근 건설행정의 핵심 현안으로 화제를 옮겼다. 충청권으로 행정수도를 옮기는 문제와 수도권에 신도시 2, 3곳을 추가로 짓는 게 주제였다.

“일부에서는 행정수도 때문에 신도시 추가 건설이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는 집을 지어야지요. 올해 상반기에 신도시 후보지를 정할 겁니다. 실사작업은 대부분 끝났습니다.”(최 차관보)

“신도시 건설도 중요하지만 서울 안에 집을 더 지어 공급 부족을 해소할 수 있게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재건축이 집값을 끌어올리는 부작용도 있지만 공급량을 늘리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건설사 돈벌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임 사장)

자연히 이야기는 건설업 경영으로 옮겨갔다.

“롯데건설이 요즘에는 해외건설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최 차관보)

“해외시장도 국내만큼이나 여건이 안 좋아요. 그래도 작년엔 일본에서 단독으로 공공청사 수주도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도로 공사를 땄고 러시아에서는 대형 쇼핑단지 건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수익성 있는 해외 공사에는 적극 도전할 계획입니다.”(임 사장)

“건교부도 올해 신시장 개척비용을 따로 책정해 놨습니다. 민간 건설사와 함께 개척단을 꾸려 현지를 방문하는 세일즈 외교도 추진할 겁니다. 돈 되는 사업에는 정부도 나서서 도와야지요.”(최 차관보) 이날 둘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공방을 벌였다. 그런데도 해외건설과 관련해서는 완벽하게 생각이 통했다.

“올해 건교부나 롯데건설이나 할 일이 많습니다. 신도시 만들어야 하고 아파트 분양도 잘 되어야 하지요. 정부와 업체가 이런 식의 대화를 좀 더 많이 해야겠어요.” 최 차관보가 덕담으로 끝을 맺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임승남 사장은

△1938년 서울 출생

△경기공고, 연세대 화공과 졸업,

일본 도쿄대 대학원 수료

△1964년 일본 롯데 입사

△1978년 롯데그룹 경영본부 이사

△1990년 롯데잠실건설본부장

△1997년 롯데쇼핑 사장

△1998년 롯데건설 사장

△주량: 측정 불가능(?)

△기억에 남는 업무: 롯데그룹 최연소 임원·사장

●최재덕 차관보는

△1948년 대구 출생

△경북고,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영국 버밍엄대 연수

△1976년 행정고시(18회) 합격

△1993년 건설부 토지정책과장

△1999년 건교부 국토정책국장

△2002년 건교부 광역교통정책실장

△2002년 10월 건교부 차관보

△주량: 측정 불가능(?)

△기억에 남는 업무: 장·차관 9명의 비서관 지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