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당선자에게 다시 던지는 질문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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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한달 정도 앞둔 지난해 11월 본보는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권영길 등 주요 정당 후보 4명과 각각 집중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편집국 부장 5명이 후보 한 명을 두고 분야별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그때 필자는 노 후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다수가 당신의 과격한 이미지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독자들의 궁금증도 풀어주면서 노 후보 본인에게 해명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도 있는 질문이었다. 당시 노 후보는 이 질문에 대해 매우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길게 설명했다. 요지는 “나는 전혀 과격하거나 불안한 사람이 아니며 매우 일관된 태도를 보여 온 정치인이기 때문에 가장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는 대통령당선자가 되었다. 만약 필자가 이 시점에서 그를 다시 만난다면 역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쏟아내는 실험적인 개혁방향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려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실 그렇다. 최근 인수위에서는 매일 새로운 개혁 방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비리를 접수하고 장관 추천도 받겠으며 일반인들이 청와대의 사정 민정 정책기획 등 업무에 인터넷으로 직접 참여토록 하겠다고 했다. 파격적인 인사 시스템과 국정운영의 실험을 예고한 셈이다. 이 직전에는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토록 하고 상속세 완전포괄주의와 증권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해 경제계의 격렬한 반발과 우려를 낳았다.

지난 연말 인수위가 발족될 당시에는 국민참여센터라는 낯선 조직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는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을 광범하게 국정에 참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고 실제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노 당선자와 인수위가 추진하는 개혁 방안들을 굳이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것만은 아닌 측면도 많다. ‘온라인 인사’방안만 하더라도 인사를 공개적으로 하여 기존의 정실 밀실 낙하산인사 등이 끼어들 소지를 아예 없애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인터넷 정치’도 각종 부작용을 양산한 기존의 낡은 정치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불안해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모든 사안에는 양면성이 있음을 노 당선자측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는 의욕만 앞서고 사리분별력이 모자란 개혁이 나라를 거덜내고 정권의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경험이 미숙한 개혁 주도세력이 대중선동 정치에 의존하면서 독선과 아집 그리고 배타성까지 겹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네티즌의 국정참여는 옳은 일일수도 있지만 네티즌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유로운 참여와 쌍방향 의견소통의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을 갖고 있는가 하면 섬뜩한 매도와 인신공격 그리고 인민재판식의 여론몰이 등 가장 비민주적인 모습도 동시에 갖고 있다.

노 당선자와 인수위는 지금 추진하는 각종 개혁적인 실험방안이 의도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나쁜 쪽의 효과만 나타낼 수도 있다는 점을 계산해야 한다. 벌써부터 노 대통령 정권이 만약 실패한다면 그것은 첫째 네티즌과 노사모 등을 통한 포퓰리즘 정치, 둘째 의욕만 앞서는 경험 없는 참모, 셋째 나의 방향은 옳고 반대하는 세력은 나쁘다는 식의 독선 때문일 것이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짱’ 노무현. 현재까지는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정치인으로 보이는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정동우 사회1부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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