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배규한/새 대통령의 ´三不三爲´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28분


닷새 후면 어느덧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에는 누구나 새로운 다짐을 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진다. 한국은 6월 온 국민의 열망으로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성취하고, 12월에는 무력도 가신(家臣)도 정치세력도 없이 오로지 소신과 젊음으로 새 정치를 주창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와 자신감에 차 있다.

▼권력-측근-인기 연연말고▼

국민적 자신감과 참여 의지는 국가 발전의 귀중한 자산이지만, 국민의 잠재역량을 동원해 낼 수 있는 리더십이 없다면 이것은 오히려 사회안정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이 21세기 첫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특별하다. 20세기 후반 한국사회 혼란의 근원이 된 다양한 갈등과 모순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를 열어가기 위해, 새 대통령이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과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우선 전임자들의 세 가지 전철은 결코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를 통치할 대권(大權)’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할 공복(公僕)’으로 선임된 것이다. 설령 의식이나 제도가 온전치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제왕으로 오인하더라도, ‘민주적 헌법을 수호’하기로 서약한 대통령은 그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권위는 공복을 자임할수록 빛날 것이며, 제왕적 유혹을 조금이라도 느낄 경우 오히려 국민의 발 아래 떨어지고 말 것이다.

둘째, 연고와 우리집단 의식에 따른 편중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국정 운영의 요체는 국가적으로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논공행상식의 인사를 하면, 그들은 대통령에게 감읍하며 충성하겠지만 그들의 과오는 곧 대통령의 허물이 될 것이다. 나라 전체에서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면, 그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이며 그 공적은 대통령에게 돌아올 것이다.

셋째,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 여론을 수렴하여 국정에 반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선정적 보도와 대중조작에 의한 ‘왜곡된 여론’과 ‘참된 여론’은 구분되어야 한다. 참된 여론이란 어떤 공적 쟁점에 대해 주체적 의견을 가진 이성적 구성원들이 공론화 과정을 통해 형성하는 통합된 의견을 말한다. 대중의 환호는 변덕스럽고 인기는 아침이슬과 같다. 지도자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보다 냉철하고 고독한 판단으로 그들의 안전과 복지를 창출해내어야 한다.

그리고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부응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새 시대를 열어가려면 다음 세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첫째,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전향적 사고를 해야 한다. ‘비전’이란 성취할 수 있는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지도자의 비전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여 성원들의 잠재역량을 결집할 수 있게 한다. 대통령의 비전과 사고의 틀은 국정의 방향과 구체적 정책의 기준이 되므로, 이에 따라 나라 전체가 과거에 집착하거나 현재에 안주할 수도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다.

둘째, 진지함과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의 판단과 말은 곧 나라와 모든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처럼 사회변동의 속도가 빠르고 그 폭이 클수록 대통령은 더욱 진지하고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오판하면 나라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다원사회에서는 좌와 우, 성장과 분배,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 물질적 풍요와 정서적 만족 등 일견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가치들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비전-균형-신뢰 실천해야▼

셋째, 사회적 신뢰 회복의 수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이 당면한 위기의 근원은 사회적 신뢰기반의 붕괴에 있으며, 이것은 주로 엘리트계층의 그릇된 행태에 기인한다. 특히 정치엘리트들의 탈법과 편법,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 권력 남용에 의한 부정부패 등은 사회적 불신과 냉소주의를 낳았다. 이제 새 대통령은 공의(公義)와 공정성에 입각하여 신뢰사회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배규한 국민대 교수·객원논설위원 khba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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