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

  • 입력 2002년 12월 13일 17시 38분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최승호 외 지음/258쪽 3만원 민음사

여기 ‘사기꾼’ 30명의 기록이 있다.

그들은 ‘미래를 소유하기 위해, 어떤 안식처에도 닻을 내리지 않고 고된 현실의 가시밭길을 헤쳐 나간 자’(‘책을 펴내며’)들이며, ‘지식과 예술의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왜, ‘사기꾼’이라고 했나?

마르셀 뒤샹의 ‘L. H. O. O. Q’.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에 콧수염을 붙였다. 제목 ‘엘 아 오 오 쿠’는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Elle a chaud au cul’을 연상시키기 위해 붙인 것./사진제공 민음사

‘진리는 어떤 목적에 비추어 우리가 편파적으로 구성한 관념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序·‘창조적 삶을 위하여’). 이 책에 소개된 30명은 이런 진리 또는 미(美)의 상대성에 절대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일찍 눈뜬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관습 전통 규범의 우상성(偶像性) 못지않게 자신들이 들고 나온 새로운 신념 또한 편파적 관념의 산물이며 ‘허공에 떠 있음’ 역시 깊이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자기는 길이요 진리다라고 단언하는 순간 그의 지적 모험은 기만으로 가득 찬 제스처가 된다.

그러므로 예술이 ‘고급 사기’라고 말한 백남준을, ‘내일이 되면 똑똑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나를 보고 엉터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보르헤스를 존중한다. 반면 ‘오늘 앞으로 100년간 독일 음악에 최고의 지위를 부여할 만한 것을 찾아냈다’고 말한 쇤베르크를 경멸한다. 후대가 그에게 보인 ‘종속’ 과 ‘우상화’ 못지않게 그 단초가 된 그의 단언을 경멸한다.

백남준과 워홀과 브르통, 뒤샹의 이름이 주는 ‘꼴통 아방가르드’의 냄새만을 이 책에서 맡을 수 있을 것으로 속단하면 곤란하다. 바흐의 음악에서 엑스터시를 찾아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있고, ‘망가진 척추로 강철 생명을 부지한’ 화가 프리다 칼로가 있다.

근대 중국 화단을 대표한 치바이스(薺白石)의 이름이 조르주 바타유의 이름과 나란히 놓인다. ‘대상이 관점에 선행하는 게 아니라 관점이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 소쉬르도 북 디자이너 로만 시에슬레비츠, 패션계의 악동 장 폴 고티에 못지않게 미적 지적 변혁자들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한편으로, ‘책을 펴내며’가 밝히듯 그들은 모두에게 통하는 망(網)을 형성한다. ‘브르통과 뒤샹은 초현실주의로 묶이며 만 레이는 이들에 대한 사진으로 유명하고 바타유는 브르통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며 워홀은 이러한 전위적 움직임을 미국에 옮겨 놓고 키스 헤링은 워홀의 뒤를 이어….’ 아방가르드의 계보학은 그들이 타파하려고 했던 기존 사회의 인습만큼이나 공고해진 것인가?

그들을 따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한마디. 그들을 우상화하지 말자, 그들이 쳐놓은 망에 갇히지 말자. 그들을 교조화하지 말자. 그들의 테제를 법전으로 만들지 말자.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할 거면 오히려 뒤돌아가자. 그들에게 항복하면 우리는 사기꾼보다 못한 거다!

민음사 박맹호 대표의 고희를 기념해 기획 제작됐고 학자 문화평론가 시인 등 30명이 나누어 집필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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