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김근태 의원의 경우

  • 입력 2002년 12월 6일 18시 42분


‘逃(도주), 否(부인), 백(Background), 錢(금전).’

검사들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되면 흔히 위와 같은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일단 도망갔다가 잡히면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물증이 드러나 범죄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으면 주변 인물 가운데 힘을 써 줄만한 사람을 찾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면 돈으로 막아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도 범죄를 저지르는데 왜 나만 처벌받아야 하느냐”는 ‘형평논리’를 내세우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때 검사들이 대응논리로 쓰는 무기가 ‘바퀴벌레론’이다. 장롱 뒤에 숨은 바퀴벌레를 모두 잡을 수는 없지만 밖으로 나온 벌레는 잡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일단 눈에 띈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검사들의 주장이다.

검찰이 지난달 22일 2억4500만원의 정치자금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고 받아썼다고 양심고백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기계적 처리’는 오히려 범죄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학계와 일부 법조인들은 주장하고 있다. 범죄인을 처벌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범죄에 대한 응징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인데 정치권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관행을 뿌리뽑겠다고 스스로 고백한 정치인을 처벌하면 오히려 정치자금 수수의 음성화만 부추길 뿐이라는 것.

최근 대학 총장들과 국회의원들이 김 의원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김 의원을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처벌할 경우 실정법 적용에는 충실한 것이 될지 몰라도 일반인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깨끗한 의원’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탄원서를 받은 검찰과 법원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하종대기자 사회1부 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