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집단기질의 구조화 과정 ´네이븐´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7시 18분


◇네이븐/그레고리 베이트슨 지음 김주희 옮김/400쪽 2만원 아카넷

남태평양 뉴기니의 이아트물 사람들에게는 ‘네이븐’이라고 부르는 기이한 의식이 있다. 소년이 칭찬할 만한 일을 했을 때, 즉 처음 적을 살해하거나 작물을 수확했을 때, 사냥감이나 물고기를 잡았을 때, 고통스러운 성인식을 마쳤을 때, 카누를 만들었을 때 이를 축하하는 의식이 ‘네이븐’이다.

먼저 외삼촌은 가장 추한 모습으로 여장을 하는데, 늙은 과부처럼 더럽고 남루한 치마를 입고는 재를 뒤집어쓰고 너덜거리는 갓을 쓰고 지팡이를 집고 절뚝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닌다. 어머니와 다른 여자들은 멋진 남자의 모습으로 분장하는데, 극락조 깃털로 화려한 장식을 하고 남자 옷을 입고 얼굴은 물감으로 칠한 뒤 큰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닌다.

해가 지면 이들 남녀들은 국부 가리개와 치마를 벗고 격렬하고 난삽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외삼촌은 사다리 위로 올라가 남자처럼 행동하는 남장 아내와 성행위를 하기도 하며, 모든 여자들이 나체로 땅위에 누우면 소년은 여자들을 밟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여자들은 “그렇게 조그만 곳에서 저렇게 큰 남자가 나오다니!”라고 말한다. 외삼촌은 치마를 올리고 엉덩이를 조카에게 비비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출산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며 조카에게는 언제나 돼지나 닭, 음식을 베푼다.

‘네이븐’은 이러한 뉴기니의 기이한 의례적 행동에 대한 문화지(Ethnography)이다. 저자인 베이트슨은 이 의례 분석을 통해 인간의 행동과 기질, 인성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정형화되는가를 연구했다. 베이트슨은 문화의 구조와 논리로부터 시작해 정서, 기질, 인지, 행동을 통합하는 일관된 규칙을 찾으려 했다. 뉴기니 마을에서 사람들은 외삼촌을 어머니와 동일시하고 조카는 아버지와 동일시하며, 결과적으로 외삼촌과 조카는 부부관계가 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베이트슨은 왜 어떤 사회에서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사회에서는 신중하고 조용하며 싸우지 않는 인성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가와 같은 차별적 인지태도에 대하여도 설명한다. 집단적 기질과 인성구조 및 분위기를 말하는 에토스(Ethos)는 그의 문화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자부심과 분열적 기질로 대표되는 남성 에토스와 조용한 협동적 분위기의 여성 에토스가, 때로는 상호보완적이고 때로는 대조와 경쟁을 이루는 방식으로 집단의 행동과 인성을 구조화한다.

베이트슨의 부인은 유명한 여성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다. 지구상에서 가장 험한 오지 중의 오지인 뉴기니의 세픽강가 원주민 마을에서 두 사람은 현장연구 중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베이트슨의 명저인 이 ‘네이븐’은 부인 미드의 문화화과정 연구와 ‘국화와 칼’을 쓴 베네딕트 여사의 문화 통합론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후 인지인류학, 정신의학과 사이버네틱스 등에 이르는 인간정신과 자연에 대한 폭넓은 지적 편력을 통해 통합적 지식을 추구하였는데, 이 책은 이러한 여정의 출발이 된 실험적인 고전이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구체적 문화기술이 들어있을 뿐 아니라 어려운 심리인류학의 추상적 논리체계를 그 분야의 전공자가 번역해 소개했으니 반갑기 그지없고, 내게는 익숙한 뉴기니의 문화경관을 가까이 두고 접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기쁘다.

이태주 한성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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